민진후(1659~1720)는 숙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 자는 정순(靜純), 호는 지재(趾齋)이다. 여양부원군 민유중의 장남이자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 민씨의 오빠이다. 동춘당 송준길의 외손(外孫)으로 정관재(靜觀齋),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의 사위이며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다. 1686년(숙종 12) 별시문과에 급제 후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으며 이후 대사간과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를 거쳐 의정부좌참찬(議政府左參贊)에 이르렀다. 서예에 뛰어났으며 사후 경종(景宗)의 묘정(廟廷)에 배향되고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묘는 안금리 쇠푸리 마을의 서측 구릉에 자리 잡은 여흥민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금관조복(金冠朝服)을 착용한 채 미소 짓고 있는 문인석의 장식이 아름답고 조각 솜씨가 사실적이다. 전후분(前後墳)으로 구성된 봉분의 위쪽에는 민진후와 첫 번째 부인인 연안 이씨(延安 李氏) 이단상(李端相)의 딸을 함께 모셨고 아래쪽에는 두 번째 부인인 연안 이씨 이덕로(李德老)의 딸을 단독으로 안장하였다.
묘역 아래의 쇠푸리마을에는 총 높이 약 425㎝에 이르는 거대한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귀부(龜趺)와 개석(蓋石)의 조각이 매우 정교하여 당대를 대표할 만하다. 귀부의 몸집에 비해 크게 만들어진 용두(龍頭)는 입안에 여의주를 문채 송곳니를 드러내며,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리고 발가락은 야무지게 땅을 딛고 있으며, 등에는 하엽비좌(荷葉碑座)를 마련하였다. 특히 개석위에는 용 두 마리가 서로 몸을 꼬며 곧추서는, 이색적인 형상을 취하고 있어 주목된다. 비문은 조카되는 이재(李縡, 1680~1746)가 찬(撰)하고 원임좌의정(原任左議政) 이관명(李觀命, 1661~1733)이 오석의 비신(높이 229, 폭 124, 두께 42) 위에 썼으며 동생인 민진원이 전액을 올렸다.
이외에도 민진후 묘 주변에는 문충공 민진원, 숙야재(夙夜齋) 민익수(閔翼洙, 1690~1742), 여성부원군(驪城府院君) 민치록(閔致祿, 1799~1858), 숙천부사(肅川府使) 민일호(閔一鎬, 1848~1907)의 묘가 소재하고 있으며, 석물은 있으나 정확한 피장자를 알 수 없는 여흥 민씨의 무명묘 여러 기가 산재해 있다.
찾아오시는 길
여주 IC를 기준으로 설명합니다.
1. 여주 IC 삼거리에서 여주 방면으로 우측방향(37번 국도) 237m
2. 점봉교차로에서 명성황후생가, 능현리 방면으로 우회전(명성로) 846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