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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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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명여(明汝)이다. 민시중의 현손이자 민흥수(閔興洙)의 손자이며 민백창(閔百昌)의 아들이다. 1790년(정조 1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795년(정조 19)년 문과급제하였다. 1798년 홍문록(弘文錄)에 4점을 얻어 홍문관에 기용되었다. 1801년(순조 1)에는 부응교로서 암행어사가 되어 황해도 병사(兵使)와 수사(水使)의 부정을 철저히 징치(懲治)하였다. 1803년(순조 3) 대사간 때는 의리를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 그 토대 위에서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1810년 대사간의 지위에 올라 간쟁을 통해 왕의 전횡(專橫)을 막고 국정의 합리화를 꾀하였다. 변통초기(變通草記)에 대한 말썽으로 중화(中和)로 귀양갔으나 3년 뒤 호군(護軍)이 되고 1814년 예조판서에 올랐다. 1811년 지중추부사로 전임되었다가 타계했다. 시호는 숙헌(肅獻)이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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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