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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이씨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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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奎 古929.2-J567o

1932년 간행본을 1969년에 중간한 것이다. 驪州 李氏 집안의 사적과 계보를 기록하였다. 1932년에 李深 등이 간행한 것을 1969년에 영인한 것이다. 영인본에서 새로 추가된 부분은 원본의 뒤에 따로 실었는데, 李雄煥의 서문과 원본 간행 이후의 계보로 구성된다. 서문은 1930년에 李允謙이 지은 것으로 족보 편찬의 동기를 적었다. 원래 中和를 본관으로 하고 있었으나 姜農山의 諸姓譜 중에서 驪李譜를 보니 先祖 李士允 때 中和로 귀양 가서 비로소 그곳을 貫鄕으로 삼았음을 발견하고, 이에 宗議를 거쳐 驪州李氏로 고쳐서 古譜를 복구한다고 하였다. 다음에 ‘幼學李應琰在成均館讀講對義’는 제17세인 李應琰이 성균관 유생으로 있을 때 강독한 경전 내용을 전재한 것이다. 다음에 ‘竹齋公日記’는 李應琰이 말년에 자신의 일대기를 정리한 것으로 자신의 관력, 李珥 등과의 교유, 康允祖와의 교유 등이 내용의 중심을 이룬다. 다음에 凡例에서는 계보의 수록 내용과 정리 방식을 제시하였다. 주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竹齋公 이상의 사적은 舊譜와 農山記를 참고하여 적으며, 竹齋公 이하는 舊譜에 의해서 적는다. (2) 先後配가 있는 경우 後配의 소생은 몇자 간격을 두고 적는다. (3) 夫人은 本貫과 姓, 父名과 관직을 적으며, 女壻는 本貫 성명 관직을 적는다. (4) 生年月日과 忌日은 廟號를 기준으로 삼는다. 이상의 내용을 통해 자신들의 계보가 驪州 李氏에서 나뉘어 온 것을 알게 되어 그 내용을 舊譜에 결합시켜 派譜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본문의 내용은 6행도로 되어 있으며 17세 이전까지는 비교적 구체적인 계보를 적고 있으나 17세에서 19세까지 單系로 내려가고 있어서 범례에서 밝힌 대로 17세 李應琰을 전후로 하여 두 개의 기록을 합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세부터는 派가 나뉘어 수록되었다. 각 인물의 수록 내용은 字 號와 과거 관력, 기타 특기사항, 生年과 卒年, 묘소의 向坐, 夫人의 인적사항 등으로 구성된다. 女는 작은 글씨의 注로 처리하였으며 外孫은 기록하지 않았다. 다른 驪州李氏의 족보로 규장각도서에 『驪州李氏世譜』(奎15703)가 있어서 비교 자료로서 참고된다. 李俊涉이 편찬하였으며, 1冊 102張으로 25×17.5cm의 크기로 영인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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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