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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암리 선사유적지 출토 민무늬토기 항아리
도자기는 우리민족이 이 땅에 정착해 살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려 있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부터 청동기시대의 민무늬토기, 삼국시대의 다양한 토기들이 있으며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분청자와 백자가 있다. 이렇듯 전시기에 걸쳐 유물이 남아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물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각 시대 사람들의 삶과 꿈,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것이다. 현재에도 그 멋스러움과 청결함에 있어서 견줄 만한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우리와 함께 할 미래지향적인 분야이다.
여주 도자기의 역사는 멀리는 여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주시 멱곡동에서 출토된 민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가 당시의 유물이며 청동기시대에는 흔암리에서 출토된 무문토기가 있다.
가깝게는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볼 수 있으며, 조선 말기 개항기엔 광주분원이 폐쇄되어 그곳에서 일하던 도공들이 백토의 생산지이던 여주에 자리 잡으며 비로소 고급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여주지역의 백토 자원 채취와 값싼 도자기 제작에 주력하였으며 우리 도자기의 전통은 그 맥을 상실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침체되었던 도자문화는 면면히 맥이 이어져 최근에 다시 발전했다. 여주의 도자기는 1960년대 중반 발전하기 시작하여, 1988년 서울올림픽에 의한 특수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증대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제품연구에 재투자하지 않은 대부분의 공장은 가격경쟁에 따른 제품의 질적 저하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는 전통도자기의 맹목적 계승에 의한 여주 도자산업의 쇠퇴를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법이 모색되었다. 젊은 작가들은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과 기법으로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려 노력하였고, 여주시에선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의 장기 종합발전계획을 세웠다. 또한 1990년부터 매년 열리는 여주도자기축제는 2003년 15번째 개최되는 등 국제적인 축제로 알려졌다. 2001년에는 세계도자기엑스포가 여주·이천·광주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으며, 2년을 주기로 세계도자비엔날레를 개최하고 있다.
2004년 현재 여주의 도자기는 크고 작은 요장이 600여 개를 헤아리는 전국 최대 규모의 도자기 생산지역으로서 전국 도자기 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대규모의 도자기공장 단지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저가의 제품에서부터 질 좋은 고가제품까지 선택의 폭이 넓으며 다양한 도자기 제조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도예산업의 메카이다. 해마다 많은 내·외국인이 도자 관련업무 및 관광으로 여주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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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