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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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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고속도로 섬강교 버스 추락사고1)

1990년 9월 1일 오후 2시 45분 여주군 강천면 강천리 앞 영동고속도로 섬강교 상행선 서울기점 61.1km에서 강릉을 출발하여 서울로 오던 강원여객소속 강원 아1063호 직행버스(운전사 홍순범 52)가 섬강교 난간을 들이받고 19m 아래 남한강 지류인 섬강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버스 안에 타고 있던 승객 30명 중 김영록(남 24,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방림리 483) 등 20대 청년 4명만 뒷좌석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여 구조되었을 뿐 나머지 26명은 모두 숨졌다. 사고 당시 폭우로 불어난 섬강은 수심이 깊었기 때문에 추락한 버스는 약 300m를 떠내려가 바위에 걸렸으며, 사고가 난 다음 날 사고 버스를 인양하였으나 버스 안에는 운전사 홍순범 등 사체 3구만 인양되었다.

사고 버스는 1일 오전 11시 40분 강릉에서 승객 11명을 태우고 출발하여 다시 진부에서 승객 8명을 태우고 장평에서 11명 등 모두 30명의 승객을 태운 것으로 밝혀졌고, 생존자 4명을 제외한 26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사고가 나자 사고지점이 여주군 관내였기에 여주군청에 사고수습대책본부를 설치하고 버스에 탔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가족의 신고를 접수하였으며, 여주경찰서 구명보트 1정과 산림청 헬기 2대, 한국해양 탐험대 20명, 잠수인력 48명과 공수특전 부대원 등 200여 명과 민간인 구조대원 20여 명이 동원되어 사체 수색작업을 벌였다. 현장에 달려온 유가족 50여 명은 2일 오전 11시 45분과 오후 1시 등 2차례 시체의 조기 인양을 요구하며 영동고속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기도 하였다.

생존자 김영록(남 24)에 따르면 “버스가 섬강교를 거의 도착할 무렵 운전자가 앞서가던 승용차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좌측으로 돌리는 순간 운전사의 어어 하는 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다리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생존자 김영주는 “물속에 차가 박힌 후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물을 마시면서 밖으로 나가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전벨트를 풀고 창문을 더듬으니 창문이 깨져 있어 밖으로 나왔다”며 “나와 보니 이미 2명의 승객이 차 지붕 위에 있었다”고 말했다.

사고수습대책위원회는 3일 오전 11시 30분경 팔당댐 수문 관리소에서 평창국교 교사 남궁선(63)의 주민등록증이 들어 있는 핸드백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옴에 따라 사체가 강 하류지역으로 떠내려갔을 것으로 보고 3일부터는 강 하류지역인 강천면 강천리 부근으로 장소를 옮겨 수색을 실시하였다. 한편 사고대책본부는 사체인양작업에 사체 1구당 50만원의 포상금을 내걸자 강원여객측도 1구당 500만원의 포상금을 내건 가운데 여주·양평에서 민방위대·경찰·공무원 등 2,773명과 어선·동력선 62척, 잠수부 61명, 경찰헬기 2대가 함께 수색을 실시하였고, 해군 U.D.T 요원 30명도 동원되면서 4일까지 20구의 사체를 인양하는 등 대책본부가 활기를 띠었다.

사고 9일 만에 23번째 최우민(1)의 시신이 사고지점으로부터 40km 떨어진 양평읍 양근리 팔당담수호에서 어머니 김영자(26) 시신과 함께 발견됐다. 떠내려가면서도 아들을 살리려고 끝까지 끌어안고 있다가 사망후 부패되면서 분리된 것으로 추정되어 더욱 안타깝게 하였다. 사고발생 13일 만에 강화군 서도면 선착부락 앞에서 장호군(5)의 시신이 마지막으로 발견되어 실종자 24명 전원이 인양됨으로써 사고대책본부는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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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