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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덕화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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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지 : 북내면 가정리
□ 시 대 : 조선

원덕화(1652~1725)는 영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평중(平仲)이고, 증좌승지(贈左承旨) 원충(元翀, 1572~1629)의 손자이자 증호조참판(贈戶曹參判) 원재(元梓, 1618~1707)의 아들이다. 수직(壽職)으로 정이품 자헌대부(資憲大夫)의 품계에 올랐으나 실직에는 나가지 않았다. 아들 원필규(元弼揆, 1687~1771)가 귀하게 되어 사후 대사헌(大司憲)에 추증되었으며, 74세의 장수를 누렸다.

가정자마을의 뒤쪽 구릉에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매몰, 폭 84, 두께 35), 상석(높이 38, 폭 141, 두께 88), 향로석(높이 33, 폭 32, 두께 22), 망주석(높이 180, 폭 38, 두께 38)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다. 향로석은 박락이 심한 상태이고, 망주석의 상단부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조각하였다. 봉분의 좌측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226)가 세워져 있다. 비신(높이 149, 폭 58, 두께 29) 앞면에 한석봉체(韓石峰體)의 대자(大字)로 “유명조선(有明朝鮮) 증가선대부(贈嘉善大夫)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원공덕화지묘(元公德和之墓) 증정부인(贈貞夫人) 전주이씨(全州李氏) 부좌(祔左)”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묘표음기(墓表陰記)는 나머지 비신의 삼면에 각자하였으나 표제는 기록하지 않았다.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 박필주(朴弼周, 1680~1748)가 지은 음기를 용양위부사직(龍驤衛副司直) 김상옥(金相玉, 1683~1739)이 썼다.

원덕화의 묘 바로 아래에는 아들인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원필규의 묘소가 있고 주변에는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원덕휘(元德徽, 1647~1706),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원진규(元晋揆, 1679~1748),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원명규(元命揆, 1682~1762),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원중회(元重會, 1713~1772) 등의 묘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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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