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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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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중오(仲悟), 호는 소설(掃雪)이며, 서울의 화족(華族)으로 1572년(선조 5) 별시에서 을과로 급제하였다. 1589년(선조 22) 익산군수를 지내고, 1592년 경상도 도사(都事)로서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6년 수원부사로 재직 중 벼슬이 높은 문관으로서 부정하게 사정(私情)을 따르고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는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이듬해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1598년 여주목사가 되었다. 1603년 천추사(千秋使)로 부경하였을 때 모리배를 군관(軍官)으로 데리고 가서 물건을 암매한 사실이 드러났다. 1604년 죽산부사(竹山府使)가 되었으나 물의가 흡족하게 여기지 않아 체차되고 판결사·형조참의·황해감사·경주부윤이 되었으나 누차 무거운 논박을 받았다. 영녕전 이안청을 영건할 때 당상으로 감독하였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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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