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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사건 | |
명성황후 시해사건진행자: 명성황후가 활동할 당시의 조선은 세계나라의 열강들이 자기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각축을 벌이고 있던 지역이였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조선을 둘러싼 세 나라, 청나라, 러시아, 일본은 조선내부에서 정치적인 주도권을 잡기위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이토우히로부미가 총리로 있던 일본은 명성황후 시해 1년전인 1894년 내각회의에서 조선내정결의안을 결의합니다. 조선의 개화를 돕는다는 명분하에 일본이 지배하기 쉽도록 일본의 제도를 미리 조선에 심어놓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계획했던데로 조선의 각종 제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를 맞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한번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삼국간섭인데요, 일본의 세력확장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가 독일, 프랑스와 손을 잡고 일본에게 외교적인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정세를 파악한 명성황후는 일본을 대항할 정치 파트너로 러시아를 선택합니다. 지금 여기 보시는 것은 1895년 9월에 조선왕실에서 발행한 관봅니다. 자막: 칙령제 1호 진행자: 여기보십시요. 칙령번호 제1호 실내각에서 공포한 칙령이 이미 100호를 넘어선 상황에서 새삼 제1호 칙령을 내린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이 추진한 내정개혁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 시작한다는 상징적인 초지라고 할 수있습니다. 실제로 고종과 명성황후는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내각을 반일성향의인사들로 재구성하고 일본 고문관들을 서구인들로 교체합니다. 명성황후를 필두로 한 조선의 기밀한 대응에 일본은 당황합니다. 자막: 그렇다면 이에 대처할 방도는 과연 무엇이겠는가? 나레이션: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를 제거하는것 이외에는 다른방법이 없었던 일본에의해 명성황후는 살해된다. 이른 새벽, 광화문방향의 총성은 경복궁의 정적을 깬다. 그리고 경복궁 북쪽의 추성문에 사오십명의 일본군이 담을 넘고 있었다. 목적지는 국왕부부의 처소인 건청궁이었다. 자막: 일본군의 경북궁 침입도1 (주조선 영국 영사관 보고서에 수록) 나레이션: 그날 일본에 의해 국모가 살해되던 비극의 현장은 영국공사 실리어가 그린 도면에도 나와있다. 경북궁에서 생활하던 미국인 군사교관 다이와 궁권의 토목기사였던 러시아인 사바틴, 그리고 순종과 부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본국에 보고하기 위해 그린것이였다. 자막: 일본군의 경북궁 침입도2 나레이션: 이 사건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치밀했는지를 알 수 있다. 궁궐에 침입한 일본인들은 민첩하게 움직여 건청궁내에 있는 명성황후의 처소, 옥호루를 점령한다. 옥호루 앞마당에는 일본군장교와 사복차림의 일본군들이 조선군복장의 사람들을 포위한채 서 있었고 건청궁으로 통하는 세 개의 문은 일본군 보초병에 의해 차단됐다. 손으로 그려진 실리어의 도면을 바탕으로 당시의 경복궁 상황을 복원했다. 광화문에서 소란을 일으켜 관심을 돌린 일본인들은 경복궁의 국정문을 통해 궁궐의 담을 넘는다. 손쉽게 궁궐에 침입한 일본인들은 곧바로 건청궁을 향했고 명성황후의 처소인 옥호루를 포위했던 것이다. 옥호루의 비극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물다섯명가량의 무장한 일본인들은 방안팎을 뛰어다니며 궁녀들을 마루아래로 내던지며 발로 걷어찼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명성황후를 찾아내 살해하는 것이였다. 궁녀들사이에 섞여 명성황후를 쉽게 찾지 못하자 일본인들은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결국 명성황후는 구두발로 가슴을 짓밟힌 채 한 일본인의 칼에 찔렸다. 그날 명성황후는 세 명의 궁녀와 함께 처참히 살해됐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인근 숲으로 옮겨져 살해범들에 의해 불에 태워졌고 재는 땅에 묻혔으며 자막: 향원정 - 경복궁 내 나레이션: 남은 잔해는 향원정 물속에 버려졌다. 자막: [대한제국의 비극] (프레드릭 A. 멕켄지 著) 나레이션: 사건직후 일본은 범행사실을 숨기기위해 언론을 통제한다. 자막: Coloned Cockerill, the famous correspondent of the New York Herald was in Seoul at the time, and at once cabled to his paper, but his message was stopped and the money returned to him 나레이션: 뉴욕헬럴드의 특파원 커넬코커릴은 기에 기사를 본국에 보내려 했으나 전신국에 압력을 가한 일본의 방해로 성사되지 못했다. 시해직후 일본정부가 개입되 있을것이라는 추측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자막: Meanwhile there is no suspicion that the Japanese Government is in the least degree implicated inthe outrage 나레이션: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서양의 외교관들에 의해 서서히 밝혀졌다. 사건당일 미국외교관 알렌을 비롯한 각국 공사들은 일본공사관을 찾아가 미우라에게 일본인들의 개입을 추궁했다. 그러나 일본공사 미우라는 그런 불법은 일본군인의 명예를 걸고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라고 범행을 부인했다. 자막: 이민원 - 국사편찬위원회 이민원: 그날 오전에 미우라 공사는 이 사건에 일본군민은 한 사란도 개입한 사실이 없다.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추궁하고 심문을 한 셈이지요. 그 다음에 열국 외교관들은 이후 그들이 입수하게되는 정보들을 바탕으로 본국 정부에 이사건의 내막을 속속 보고하게 됩니다. 바로 이와같은 서양 외교관들의 역할이 일본정부에게 커다란 압력으로 작용했고 일본정부가 크게 부담을 느낄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나레이션: 사건을 밝히려는 외국공사관들에게 위협을 느낀 일본은 재판을 하겠다는 명분으로 사건혐의자들을 본국으로 송환한다. 사건이 일어난지 16지난 1895년 10월 24일 미우라를 비록한 마흔여덟명의 사건혐의자들은 히로시마의 우지마항에 도착합니다. 자막: 히로시마항 나레이션: 그러나 히로시마 재판소는 자막: 히로시마 공소원(재판소) 나레이션: 1896년 1월 20일 모든 상황을 무시한 의외의 판결을 내렸다. 증거불충분으로 사건혐의자 마흔여덟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자막: 형사소송법 제 165조에 따라 피고인 모두를 면소하고, 미우라 고로우, 오카모토 류노스케, 아다치 겐조, ...등은 각각 방면한다. 나레이션: 이것은 일본인 그 누구도 이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는것을 공식적으로 대외에 선포한것이다. 자막: 일본도쿄 나레이션: 그러나 일본은 재판에서 무죄를 판결했지만 이미 범행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를 남겼다. 자막: 일본 외무성 외교사료관 나레이션: 일본 외무성 자료가 보관되어 있는 외교 사료관, 일본방위청의 문서자료가 공개되면서 자막: 한국왕비살해일건 나레이션: 명성황후의 시해사건의 자료가 함께 공개되었다. 이 자료속에서 당시 조선에서 사건을 조사한 우치다 일본영사가 히로시마 재판소에 부시노 부장검사에게 보낸 사건 보고서가 발견되었다. 이보고서에는 우치다 영사가 범인 명단과 증거품을 확보했으며 그것을 본 국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자막: 다카하시, 삿사 등이 살인 또는 물품 탈취한 사건에 대해서는 증인이 있다. - 우치다 영사 보고 전문(1895. 11.6) 나레이션: 11월 6일 전문에서 우치다 영사는 다카하시, 삿사 등 구체적인 이름을 언급하며 궁궐에서의 살인과 물품약탈에 대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으며 자막: 왕성 사변 시에 어떤 부인을 포착하고 다른 일본인이 칼로 이 부인을 살해할 때 - 우치다 영사 보고전문(1895.11.8) 나레이션: 11월 8일 전문에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궁궐에서 살인이 자행됐음을 시인하고 있다. 그러나 우치다 영사의 사실보고는 일본정부에 의해 외부유출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자막: 최문형 명예교수 - 한성대 사학과 최문형 명예교수: 그러니까 사건의 진상은 이런겁니다. 일본인이 개입되었다는 것도 은근히 비치고 (우치다 영사는) 말조심하라고 일본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아요. 언론인을 매수하고 특파원을 매수하고 갖은 외교채널을 다 동원하고 여기에 개입된 사람들 함구하고 증거를 왜곡하고 모든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말하자면 부정한 겁니다. 일본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막: 주조선 미국대리공사 알렌의 보고서(1895.10.10) 자막: Icannot belive that count Inouye was simply acting a force during his last two months here, on that these terrible acts was planned by viscount Miura. 나는 지난 두 달동안 이노우에가 여기에서 단지 사소한 일만 하고 있었다고 보지 않으며 이런 가공할 일이 미우라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고 믿을 수 없다. 나레이션: 그러나 미국공사관에 있던 알렌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일본정부가 어떤형태로든 개입돼 잇다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다. 이보고선 사건의 주모자로 미우라공사 이전에 조선공사를 했던 이노우에가오로를 지목하고 있다. 자막: 이토오 히보부미와 이노우에 가오루(영구 유학시절) 나레이션: 이노우에가오루는 어떤 인물인가? 이노우에는 당시 이토오 히로부미와 함께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일본을 움지이던 대표적인 인물로 천황에게 수상을 천거할 수있는 일곱명의 원로중에 한 사람이였다. 자막: 이노우에 가오루(외무대신 시절) 나레이션:이토오가 일본을 통치했다면 이노우에는 강화도조약부터 시작해 조선진출을 시도하던 인물이였다. 이런 이노우에가 자신의 후임으로 추천한 인물이 바로 미우라 고로우다. 당시 퇴역군인이였던 미우라는 고향에 머물던 인물로 외교관으로는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노우에는 미우라가 조선에 부임하고 나서도 20여일간을 함께 조선에 머문다. 외교상 관례가 없는일이였다. 그리고 이노우에가 조선을 떠난지 17일만에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자막: [세외정상공전](이노우에 가오루 전기) 나레이션: 이노우에의 전기에는 이 두인물이 시해사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공사발령이 있기 몇일전 이노우에는 미우라에게 편지를 보내는데 자막: (지금에 와서)자신의 결심을 바꾸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나레이션: 둘 사이에는 모종의 약속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막: Count Inouye having made a complete mess of thing at Suoul, and given Corea up, Genetal Miura had been sent with the intention of making him the scapegoat. 나레이션: 당시 노스차이나 헤럴드 신문에는 이노우에가 주모자로 미우라는 하수인으로 보고 있었으며 이것으 미우라 개인이 아닌 일본의 최고 정치권력가가 범행의 주모자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자막: 최문형 명예교수 - 한성대 사학과 최문형 명예교수: 이노우에가 관여했다. 즉 이노우에가 민비 시해사건을 주모했다는 사실이 일본의 국가적 범죄입니다. 왜냐하면 이노우에의 캐리어가 그랬고 이노우에가 조선문제, 한국문제에 관한한 전결권을 가졌고 이노우에는 겐로고 그래서 그가 이노우에가 민비시해사건의 주모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시해를 하기 위한 세부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세부계획은 미우라에게 맡겼다 이 말입니다. 정책적인 결정은 이노우에가 하고 세부계획은 미우라에게 맡긴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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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