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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모습 | |
명성황후의 모습자막: 국사편찬위원회 나레이션: 우선 명성황후가 어떤 여인이었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명성황후의 모습을 확인할수 있는것은 1990년 국사편찬위원회에 펴낸 중학교 국사교과서, 명성황후라고 씌어진 궁중복 차림의 여인이었다. 자막: 중학교 국사교과서(5차 개정판, 1990) 나레이션: 그러나 1997년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이 사진은 사라지고 명성황후의 모습은 쉽게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자막: 대한제국 멸망사(1906년) 나레이션: 사라진 사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06년 미국선교사 헐버트가 쓴 대한제국 멸망사라는 책에서였다. 헐버트는 조선의 궁중풍습을 소개하며 자막: 정장을 한 궁중의 여인 나레이션: 사진을 싣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주인공이 명성황후라는 설명은 이 책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같은 사진은 미국의 의사 언더우드의 부인의 책에서도 자막: 한국에서 토미 톰킨스와 더불어 보낸세월(1905년) 나레이션: 등장하는데 정장을 한 한국여인이라고 썼을뿐 명성황후의 사진이라는 언급은 없었다. 자막: 신복룡 교수 -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신복룡교수: 언더우드 자신이 왕비의 사진이 아니라고 하욧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왕비의 사진으로 인용된것은 역사가들의 실수 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쟁이 한국사회는 물론이고 아직도 일본 교과에서 그 명성황후를 악의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한 도구로서 인용되고 있다는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집니다. 자막: 일본역사교과서 나레이션: 모두 8종류인 일본의 역사교과서,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사라진 명성황후의 사진은 2001년 일본의 개정판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발견된다. 명성황후의 사진을 한쪽에 싣고 명성황후가 있는 조선궁궐의 내부는 조선침략에 이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막: 일본은 조선 궁정 내의 대림을 이용해서 일본에 기대려고 하는 세력과 힘을 모아 청의 세력을 없애려고 했다. 자막: 조선일보(1935. 1.1) 나레이션: 그런데 사진의 허위성을 입증해 주는 단서는 의외의 곳에서 찾아졌다. 명성황후라고 믿었던 똑같은 사진이 1935년 1월 1일자 조선일보에 실려있었다. 규중에 숨은 고운 각시들이라는 신문기사였다. 아직 명성황후를 기억하는 1930년대, 궁중풍속을 얘기하며 황후의 사진을 인용하는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자막: 한국사진첩(1905) 나레이션: 문제의 사진이 황후가 아니라 궁녀라는 사실은 일본에서 발간된 여러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의 풍속을 일본에 소개하고 있는 한국사진첩, 이 책에서 역시 문제의 사진은 궁녀로 소개되고 있다. 자막: 한국병합기념첩(1911) 나레이션: 한일합방을 기념해 일본이 발행한 한국병합기념첩에서도 역시 나이든 궁녀로 소개되어 있다. 일본은 이 사진이 명성황후가 아닌 궁녀의 사진이었음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막: 신국주 명예교수 -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신국주명예교수: 명성황후 사건에 관련했던 고바야가와 히데오 라는 (사람의) 수기가 처음 나왔어요. 직접 관련자의 수기이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것인데 여기에 돌연히 일제때 해방 직전까지 조선 풍속화에 궁녑니다라며 자기네가 여러방면에 선전하던 궁녀 사진을 (그 수기에) 올려놓고 이게 명성황후, 민후입니다. 자막: 민비 시해기(고바야가와 히데오 著) 나레이션: 한성순보 편집장으로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직접 가담했던 고바야가와 히데오. 그는 민비 시해기라는 당시 수기를 남겼는데, 그 책에 대원군의 사진과 궁녀의 사진을 나란히 실어 궁녀를 명성황후로 둔갑시켜 놓고 있었다. 자막: 일한외교사료(1981) 나레이션: 궁녀가 명성황후로 공식화된것은 한 권의 외교사료문서, 총독부시절 조선관련자료를 집대성한 책에서 이제 궁녀의 사진은 이왕조 제26대 고종왕비 명성황후 민씨로 완전히 둔갑해 있었다. 신국주명예교수: 궁녀의 사진을 왕비의 사진으로 둔갑시킨 것은 주요한 일본으로서는 의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의도냐 하면 가기네가 조작한 사진을 사실 그대로 관철시키겠다는 의도하에 한국 측에서 이에 올바르게 잡지 않고 거기에 대해서 반발하는것이 없으니까 한국의 사학계를 깔보고 결국에는 자기네의 식민주의 사관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그러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성은 상당히 심각한 것입니다. 진행자: 현재 명성황후의 사진이라고 확인된 사진은 단 한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진은 물론이고 명성황후에 대해서 있을법한 사료의 소재도 현재 파악이되고 있질 않습니다. 그렇기때문에 명성황후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제대호 아는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당시에 황후를 만났던 국내외 인사들이 간간이 기록을 남기고 있었는데 그나마 명성황후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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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