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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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도자직설7 김윤재 개인전 <회광반조 廻光返照>

  • 전시기간 2023-03-10 ~ 2023-04-16
  • 전시장소 여주도자문화센터
  • 전시작가 김윤재
전시내용
여주도자문화센터 기획초청전 여주도자직설(驪州陶瓷直說)

여주시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여주도자기의 활성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건립한 여주도자문화센터의 릴레이 기획초청전 <여주도자직설>은 여주하면 떠오르는 조선 제4대 왕,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업적중 하나인 『농사직설』에 영감을 받아 기획되었습니다. 1429년 편찬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의 풍토에 맞는 농법으로 편찬된 책으로는 효시가 되었는데 지침서일 뿐 아니라, 여러 농서 출현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주도자직설>은 『농사직설』이 당시 농민들의 수확량 상승에 일조하고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하는데 기여한 점에서 착안해 여주에 터를 잡고 저마다의 성취를 이뤄내고 있는 지역 도예가들을 자주적으로 소개, 기록하고 보다 많은 분들에게 여주 도자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장으로 자리매김 하고자 합니다.


김윤재, 회광반조廻光返照를 통해 드러나는 영성靈性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Eva Armisen)은 삶의 즐거움과 소중함을 일깨우는 예술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살아오면서 느낀 행복한 감정과 아름다운 기억을 그림에 담아내는데 그의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은 작가의 의도대로 따뜻한 기억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김윤재 작가 역시 작품에 감정을 싣는다. 에바 알머슨이 둥근 파마머리를 한 여성을 주인공 삼아 달콤한 미소, 일상, 가족의 모습 등 직접적인 묘사를 통해 감정을 형상화한다면 김윤재 작가는 은유적이고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지역 기반 체험과 교육, 도시 재생 등 공공미술 활동과 생활 자기 제작에 집중해왔다. 공공미술의 목적은 대중에게 더욱 나은 환경과 양질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고, 생활 자기 제작은 그릇을 쓰는 이들에게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에게 도자 작업은 생계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타자를 향한 마음과 정신을 구현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공공미술 활동은 대중의 호응과 동의를 선뜻 끌어내고, 선한 마음으로 빚어낸 생활자기는 투박하지만, 그릇을 쓸 이들을 향한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

그런 작가에게 예술가, 창작자로서 달항아리를 빚는 순간은 오롯이 개인적인 만족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다. 공공미술과 생활 자기 제작으로 바쁜 와중에도 달항아리를 빚는 이유를 물었을 때 작가의 대답은 작업하는 순간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시간을 내서 작업한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외유 혹은 일탈, 유희와도 같은 달항아리 작업은 스스로의 행복과 만족을 위한 것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타자에게 전해지는 작가의 감정이 그 어느 활동보다도 강렬하게 농축되어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화가들은 신을 표현하기 위해 빛을 차용했고, 님부스(nimbus)와 광배(光背),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 등을 창안(創案)했다. 중세 이콘화(ikon)와 성소(聖所)는 대중에게 신의 존재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영성(靈性)을 위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영성은 인간의 내적인 자원의 총체로서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 타인 및 상위 존재와의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시키며 신체, 영혼, 마음을 통합하는 에너지, 존재에 대한 의미와 목적을 주관하게 하고, 당면한 현실을 초월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등을 의미하는데 헬미니악(Daniel A. Helminiak)은 “진정한 자기 초월을 향하는 본질적인 인간의 역동성을 통합하려는 특히 고귀하고 높고 선한 것을 추구하는 삶의 실재”라고 정의하였다. 작가에게 달항아리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먼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즐거움의 현현(顯現)을 넘은 영성의 발현(發顯)이라는 것이다.

앞서 김윤재 작가의 말마따나 일련의 달항아리 작업은 별다른 목적 없이 그저 즐겁고 재밌어서 빚어낸 것으로 작가의 충만한 행복과 희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호모 루덴스(Homo Ludens)에서 모든 것이 놀이라고 했다. 고대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행위를 놀이로 부르며 그것을 지혜로 여겼다. 일부 사람들은 놀이를 천박하다고도 생각하지만, 놀이의 개념은 이 세상의 생활과 행위에서 분명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 왔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문명은 놀이 속에서 생겨나고, 놀이로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만드는 인간(Homo Faber)을 넘어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개념은 놀이를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가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가 역사 발전의 원동력 중 하나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서구적 개념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우리 민족과도 밀접히 맞닿아 있다. 한국 민중문화의 두 가지 특성으로 놀이와 신들림을 든 조흥윤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훨씬 다양하고도 독특한 놀이 문화를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 민중 놀이는 이렇듯 일과 대비되거나 구분되는 개념으로서의 놀이가 아니다. 그것은 일과 여가와 신앙 속에서 그것들과 함께 얽히고 어우러져 즐겨지던 삶의 표현이다. 한국 민중은 놀이를 그렇게 삶의 율동으로서 익히고 생리로 가다듬어 왔다. 그것을 민중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김윤재 작가의 달항아리 작업에 대한 두 번째 당위성은 작가의 말처럼 일종의 놀이 혹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욕구와 정서로 이해하는 것이 마땅하다.

“두 개의 반달을 빚어 하나의 보름달을 완성하였다. 여주에서 채취한 흙을 분장하여 여주만의 색을 완성했다. 장작가마로 소성하여 작품의 깊이를 더하였다.”

모든 매체에는 다른 매체와는 구별되는 특수성이 있고, 기술적 기량이 뒷받침되어야 원하는 바를 오롯이 드러낼 수 있다. 김윤재 작가에게 흙은 원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매체로 오랜 시간 이어온 작업을 통해 어느덧 원숙한 기량을 획득하고 독자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성공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형식논리나 방법론보다는 예술성과 작품성이지만, 최소한의 독자적 정체성을 얻기 위한 지난한 과정과 형식실험의 산물을 도출하는 여정은 충분히 인정받아 마땅한 것일 것이다. 작가의 작업적 성취 측면에서 보자면 결정적인 차별점은 자연 유약과 직접 배합한 흙과 화장토, 장작가마 소성 과정을 거친 기물이 뿜어내는 특유의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유약과 태토의 빛깔과 분위기는 보는 이, 보는 순간에 따라 다른 감정을 선사하지만, 보편적으로 따스하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색 밑에서 부드러운 빛의 질감이 배어 나오는 것 같은, 작가의 선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은 섬세하고도 미묘한 분위기가 담겨있다. 시각적 반응을 넘어 촉각적인 느낌마저 자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유약과 흙, 성형과 소성 방식 때문에 보여지는 비정형과 우연적 결정들은 이러한 분위기를 보다 가중시킨다.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수많은 결정, 기회 인자들 속에서 매 순간 선택하거나 결정된 우연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는 회화가 매번 일회적인 사건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도자 작업은 그보다 더 즉흥적이고 예측 불가능하며 유일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이토록 까다로운 도자 작업을 통해 결정적인 형태로 붙잡을 수 없고 똑같이 재현하기조차 어려운 정서와 감정을 포착해 보여주는 동시에 작품을 바라보는 이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분을 전이시킨다. 플라톤(Plato)은 모방론(模倣論)에서 상기가 예술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한다. 규정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정할 수 없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상실과 그들의 허물어진 삶의 의미를 행복과 즐거움이 담긴 작품을 통해 회복하고 복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작가의 작업은 보편성을 얻고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으며 이는 개인적인 만족을 넘어서 타자와의 소통 즉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음에 이른다. 이것이 김윤재 작가의 작업이 갖는 세 번째 의미일 것이다.

김윤재 작가의 달항아리 작품은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무의식을 심층의 진실로 모델화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자라는 선형적 질서에 익숙치 못한 작가가 본인조차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하고도 다양한 의미와 이유를 근거로 구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개념의 과포화 속에서 정작 작가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사라지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 모호한 것은 허구나 기만, 거짓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양태를 가지기에 유희적이다. 라캉(Jacques Lacan)의 실재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은 보편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김윤재 작가는 작품을 통해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고 감각의 층위로 불러내는 회광반조(廻光返照)를 이뤄낸 것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회광반조를 통해 드러나는 영성은 작가가 뜻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간의 삶과 사유가 켜켜이 쌓여 이뤄낸 보물과도 같은 성취이기에 마땅히 박수를 보내고자 한다.

글. 안준형 여주시청 주무관, 문화행정가

김윤재는 단국대학교 도예학과를 졸업하였으며 행주미술공예디자인대전 최우수상, 한국백제미술대상 우수상 등 유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현재 경기 여주에서 곰아저씨 공방을 운영하며 우리 동네 문화예술교육, 마을 미술 프로젝트 조형물 설치 작업 등을 통해 도예의 일상화와 대중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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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