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전시

야외전시

  • 복사
  • 해당 서브 사이트명 qr코드

    모바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 페이지로 바로 접속 할 수있습니다.

여주박물관 야외전시장에서는

기증을 받거나 여주 지역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석물을 옮겨와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문석인, 연자방아 등 석조물과 백운 이규보 문학비,
목은 이색 시조비, 묵사 류주현 문학비 등이 있습니다.
시민들에게 다양한 역사적 볼거리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장이 되어
익숙하면서도 잘 몰랐던 석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대표전시유물

목은 이색 시조비

목은 이색 시조비

고려말의 대학자 목은(牧隱) 이색(1328~1396)의 시조비이다.
현대 여주의 유명한 한학자(漢學者)이자 후손인 이현구(李賢求)가 이색의 서거 6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시조비는 황포돛배의 형상으로 만들었는데 조형성이 아주 뛰어나다.
돛의 앞면에는 이색이 지은 시조를 쓰고, 뒷면에는 청자(靑磁) 자판(磁板)에다 이색의 생애를 약술(略述)하였다.
석조(石造)는 홍기표(洪基杓)가 담당하고 자판(磁板)은 이상규(李尙珪)가 맡아 1996년 10월 30일 여주군향토사료관(현 여주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건립하였다.

백운 이규보 문학비

백운 이규보 문학비

고려시대의 대문호(大文豪), 백운(白雲) 이규보(1168~1241)를 기념하기 위하여 귀부이수(龜趺螭首) 양식으로 건립한 문학비이다.
오석의 비신 앞면에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선생(先生) 문학비(文學碑)”라고 대자(大字)로 크게 쓴 후, 나머지 면에 종후생(從後生)으로 학술원회원이자 민족문화추진회장을 역임한 이우성(李佑成)이 삼가 지은 비문을 진양후인(晋陽後人) 하한식(河漢植)이 정성들여 썼다.
1996년 여주시군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여주 이씨(驪州李氏) 문순공파(文順公派) 대종회(大宗會)의 협찬을 받아 여주군향토사료관(현 여주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건립하였다.

묵사 류주현 문학비

묵사 류주현 문학비

여주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인 묵사(默史) 류주현(1921~1982)의 문학비이다.
비의 뒷면에는 구상(具常)이 짓고 원중식(元仲植)이 지은 류주현의 생애를 기록하였다.
1996년 여주군민의 뜻을 모아 여주군향토사료관(현 여주박물관)의 야외전시장에 건립하였다.

동자석

동자석 (童子石, Little Boy Stone Statue)

화강암으로 제작된, 양손을 공손히 맞잡은 형상을 한 2기의 동자석이다.
여주군향토사료관(현 여주박물관)의 교리지역 지표조사 과정 중 발견되었다.
의습선(依褶線)이 부드럽게 처리된 양식상의 특징으로 볼 때 조선 선조대(宣祖代)를 전후하여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석인

문석인 (文石人, Civil Official Stone Statue)

이 문석인은 여주시 하거동 민경혁묘 아래 폐묘에 있던 문석인으로 조선중기에 유행하던 사모관대(紗帽冠帶) 형태의 공복(公服)을 착용한 양식이다.

향로석

향로석 (香爐石, Incense Pedestal)

무덤 앞에서 제를 지낼 때 향로를 올려놓는 돌이다.
향은 냄새를 피워 나쁜 공기를 정화하고, 벌레나 나쁜 기운을 쫒는 역할을 하며 무덤의 상석(床石) 앞에 향로석을 놓는다.
이 향로석은 탁상 문양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주어사지 취암당대사 정여 승탑

주어사지 추암당대사 정여 승탑 (走魚寺地 㠇岩堂大師 靜如 僧塔, Stone Stupa of Great Master Chu-am-dang)

여주시 산북면 주어리에 위치한 ‘주어사지’에서 1997년 발견된 유물로 추암당대사(㠇岩堂大師) 정여(靜如)의 승탑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며, 1997년 여주군 문화공보실에서 수습하여 향토사료관에 전시되다가 현재 여주박물관 야외공간으로 옮겨졌다.
주어사는 1779년(정조 3) 권철신이 정약전 등의 제자들과 함께 머물며 천주교 강학을 했던 장소로, 한국 천주교 발상의 요람지로서 교회사와 민족사적 측면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승탑

승탑 (僧塔, Stone Stupa)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한 탑으로 부도(浮屠)라고도 한다.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는 팔각원당형 승탑이, 고려말에서 조선초기에는 석종형 승탑이 유행하였다.
또한, 조선시대 일반형 승탑은 대체로 탑신이 북모양으로 비대하여지고 기단부와 지붕도 두툼해지면서 조각장식도 굵직하게 표현되었다.
이후 탑신이 공모양으로 변하고 처마 끝이 두터운 수직단면으로 처리되며 지붕은 좁고 높아지는 형식으로 변화되었다.
이 승탑은 기단부의 복련과 그 안의 연꽃문양, 지붕돌의 표현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고달사지 수습 용두

고달사지 수습 용두 (高達寺地 收拾 龍頭, Dragon Head at Godalsa Temple Site)

이 유물은 고달사지 지표수습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이다.
용머리를 형상한 유물이나, 어느 석조물의 용머리 부분인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우물 상석

우물 상석 (井 上石, Well)

예로부터 우물은 물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인공시설로 벽의 재질에 따라 크게 나무, 돌, 토기로 구분된다.
이중 현재 확인되는 고대 우물들은 대부분 돌로 쌓아 만든 석조 우물이다.
우물 상석은 우물 입구의 가장자리 막음돌로, 이 유물은 돌을 다듬어 정(井)자로 결구하였다.

연자방아

연자방아 (硏子磨, Millstones worked by ox)

소를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농기구로, 연자매라고도 한다.
강천면 적금리와 가남읍 심석리에서 사용했던 것이다.

콘텐츠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만족하셨습니까?

만족도 조사

담당자 정보

  • 담당부서 문화예술과
  • 담당자 박보경
  • 연락처 031-887-3576
  • 최종수정일 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