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두영
여주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북내면에서 이원기(李元基)·원필희(元弼喜)·조경호(趙經鎬) 등 학생들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하였다. 현암리(峴岩里)·장암리(長岩里)·덕산리(德山里)·와룡리(臥龍里) 등 인근마을을 다니면서 주민들을 규합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후, 당우리(堂隅里)의 공북학교(拱北學校)에 모인 800여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되었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위반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동년 7월 3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