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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딜방아

디딜방아는 기계방아가 등장하면서 1930년대부터 차츰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노인들에 따르면, 보통 한 마을에 2~3개의 디딜방아가 있었으며, 개인과 마을 공동소유로 나누어진다. 디딜방아는 주로 쌀, 조 등을 찧거나 빻는 데에 썼다. 개인소유인 경우에는 가족, 친척들이 주로 썼고, 마을 공동소유인 경우에는 마을 사람들이 1년에 한 번씩 공동으로 수리하고, 오는 순서대로 방아를 찧었다.

디딜방아에는 만든 연호와 특별한 문구를 적는데 이천지역의 방아에는 “庚申年 庚申月 庚申日 庚申時 姜太公造作”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강태공이라는 이름을 적은 것은 그가 디딜방아를 발명했다는 속설 때문이고, 경신(庚申)이라는 문구가 많이 보이는 것은 경신일·시(庚申日·時)에만 방아를 만들거나 수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방아를 찧지 않을 때는 방아공이를 Y자형 괴밑대에 고정시키거나, 방아공이를 세워 끈에 매단다. 즉 공이가 위쪽으로, 방아다리가 아래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방아를 찧을 때는 사람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천장에 끈을 매달거나 철봉대와 같은 손잡이를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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