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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와 의복

혼례복은 해방 이후에 양장으로 바뀌었다. 남자는 양복을 입고, 여자는 한복에 너울을 쓰고 혼례를 치른 것을 1950~1960년대 사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 여자는 웨딩드레스를 입는다.

전통혼례에서 남자는 ‘사모관대(紗帽冠帶)’, 여자는 원삼에 족두리를 쓰고 혼례를 치렀다. 사모관대란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관복에 각대(角帶)를 허리에 차고, 목화(木靴)를 신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치 관원(官員)의 차림이다. 혼인날만큼은 농민도 관원이 되는 것이다.

사모관대를 개인적으로 해입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보통 마을 공동소유의 사모관대를 빌려서 입었다고 한다. 신랑은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나 도포를 거치고 혼례를 치르러 신부 마을로 갈 때 사모관대를 빌려 입었다. 혼례가 끝나면 예복을 벗고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이포리에서는 기러기, 사모관대, 원삼을 동네 공동소유로 사용하였으며, 이것들을 이용한 사람들은 약간의 사용료를 지불하여 혼례복을 수선하거나 구입하는 데 썼다.

신부는 청홍(靑·紅)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원삼(圓衫)’을 입는다. 치마 안에는 속속곳·바지·단속곳 등을 입는다. 신부의 옷은 청·홍치마 두 벌과 ‘저고리삼작’을 갖추는 것이 격식이나 대부분의 집에서는 이것들을 모두 갖추지 못했다. ‘삼작(三作)’이란 세 벌의 저고리로 분홍저고리·노랑반회장·녹색삼회장을 말한다. 혼례에 입는 치마와 저고리는 신랑집에서 예물로 보낸 것이다.

1950년 이후에 행해진 전통 결혼식 사례를 보면, 4인교 가마를 타고 신부집에서 혼례를 치르기도 하였고, 이때 신랑은 바지, 저고리, 조끼, 마고자를 입었다. 또한 한국전쟁 중 어려운 살림에 결혼식을 치를 때 신부들은 치마 저고리만 입기도 하였다. 혼수의복으로는 한복, 일상복, 앞치마, 버선, 장롱 등을 마련하였다. 장신구는 노리개, 금반지, 루비반지 같은 폐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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