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상(黃宰相) 효헌(孝獻)은 나이 40세가 되지 않아 이조참판을 파직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포의(布衣)를 입은 형상은 마치 서생 같아, 보는 사람이 모두 그가 재상인 줄 몰랐다. 저녁에 신륵사에 유숙하였더니, 유생 서넛이 둘러앉아 멸시하여, 공이 말석에 자리 잡았다. 한 유생이 먼저 말하기를, “얼마 전 금강산에 갔는데 정말 명산이었소. 한 중이 황모씨의 시를 소매에서 내 보이는데 정말 가작(佳作)이었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나도 일찍 한번 가보았는데 과연 공의 말과 같았소” 하니, 유생이 말하기를, “나이 젊은 서생이 어찌 그리 일찍이 구경하였을까?” 하였다. 공이 말하기를, “일찍 강원도 관찰사로 임명받았을 제 우연히 한 번 보았소” 하니, 유생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창황히 달아났다. 공이 그들을 불러 말하기를, “공들이 마음에 있는 그대로 정말 솔직하니, 친구가 될 만하다” 하고, 작은 술상을 차려 마음껏 즐겼다. 이 후로 서로 내왕하며 매우 깊은 우정으로 사귀었다. 이 이야기는 『대동야승』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