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지금의 금사면인 장흥리 일대를 장흥동(長興洞)이라 하였으며, 지금의 마을에는 인가가 없고 장흥사(長興寺)라는 큰 절만 있었다고 한다. 이 절은 황창부위 변공(邊公) 광보의 묘를 쓰게 됨에 따라 어명에 의해 원찰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장흥사가 있었던 마을이라 장흥골 또는 장흥동, 장흥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흥리가 됐다. 양달말과 음달말이 있다. 고려 시대 목은 이색의 시 「금사팔영」에는 “장흥에서 알밤을 줍는다”는 시구가 전해지고 있다.
장흥습율(長興拾栗)
- 가을바람 우스스
- 秋風初瑟瑟
- 밤은 누룻누룻
- 栗樹漸壘壘
- 나홀로 기억하리
- 獨往吾曾記
- 알밤이 떨어질 때를
- 金丸落地時
- 양달말 : 장흥리 위쪽 마을로 양지가 드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음달말 : 장흥리 아래쪽 마을로 음달이 지는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어둠골은 장흥리 음달말에 있는 골짜기로 나무가 우거져 항시 어둠 컴컴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느티나무골 : 장흥리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는 마을이 있었으며, 느티나무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는 골프장 숙소가 그 곳에 들어서서 마을은 없어지고 말았다.
- 약천암(藥泉庵) : 장흥사터 약 500미터 위에 있는 절로, 장흥사를 철거할 때 은신처로 지어진 것으로 보이며, 약천암이라는 이름은 절 주변에 유명한 약수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 장흥사터(長興洞) : 금사면 장흥리 상두산내 남쪽 골짜기인 절골에 옛 절터가 있다.
- 장흥사지 우물터 : 장흥사지 앞에 있는 우물로 직경이 1미터 정도이다. 이 우물은 장흥리에 간이 상수도가 생기기 전까지 장흥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로, 동네에 부정한 일이 있을 때에는 우물물이 뒤집힌다고 한다. 때문에 상여가 이곳을 지날 때에는 가마니나 거적으로 이 우물을 덮는다고 한다. 또한 겨울에 우물물이 마르면 그 해 여름에 가물어서 농민들이 물 걱정을 하게 된다는 전설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