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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리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으로 쇠일, 소일, 또는 금곡리라 하였는데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금곡리라 하였다. 옛날 조씨(趙氏)가 살다 떠나 조촌(朝村)동이라 했고, 지금으로부터 약 300년 전에 허씨(許氏)가 들어와 12대째 살고 있는 허씨 집성촌이다.

마을 앞 강금산에서 금을 캐어 내던 곳이라 하여 쇠야[金野]라 부르다가 금을 캐는 사람들이 많자 소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 강금산에 개만한 금덩어리가 묻혀 있다는 전설에 따라 금(金)자와 곡(谷)자를 따서 금곡리라 하였다고도 한다.

  • 새터말 : 일명 새터로 금곡리 서쪽에 새로 된 마을을 말한다.
  • 아랫말 : 금곡리 새터말의 아래쪽 마을로, 아랫말 사람들의 공동 우물과 주위에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 절터골 : 옛날 어떤 지관(地官)이 명당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연대리 서시리 주막에서 바라보니 금곡리 뒷산, 지금의 절터가 명당이라 부랴부랴 달려와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애만 태우다 돌아가곤 했다 한다.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다.
  • 금곡천(金谷川) : 여주군 가남면 연대리, 금당리에서 시작되어 점동면 부구리, 청미천(淸渼川)으로 합류되며 연장 5.5km, 유로연장 8km, 유역면적 16.25km이다. 금곡리에서 시작되어 금곡천(金谷川)이라 하며 한강의 제2지류이다.
  • 강금산(剛金山) : 일명 개금산 또는 갱금산으로 불리는 강금산은 가남면 금곡리 , 송림리, 점동면 덕평리, 부구리 경계에 걸쳐 있는 높이 280m 의 산으로 청미천과 오갑산을 바라보는 가남면 동부 지역의 대표적인 산이다. 옛날 이 산에 개와 같은 모양의 크기의 금을 묻어 두었는데, 억수 같이 비가 내리고 난 직후 산안개 속에 그 형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때 안개 속을 해 집고 이 금덩이를 캐려고 그 형상을 따라 산 속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어갔으나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후 욕심에 눈이 어두우면 결국 비참한 종말을 맞는다는 교훈과 함께, 마을사람들이 식목을 하여 다시는 그 개와 같은 금의 형상이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한다. 그 후 아무도 다시는 금덩어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마을도 평안하게 살아온다 한다. 지금도 그 개만한 금 덩어리는 강금산 어딘가에 묻혀있을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부터 이 산에는 개만한 금빛이 비추어 많은 사람들이 금에 욕심을 내어 그 위치를 확인 하고자 산으로 올라가면 보이지 않고 산에서 내려오면 또 금빛이 보였다고도 한다. 이는 산이 외로움에 금빛을 띠어 아름답게 하여 많은 사람들을 산으로 유혹하여 외로운 정을 달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명 개금산 또는 갱금산 이라한다.
  • 기차바위 : 마을 뒤 산꼭대기에는 기차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옛날 힘이 센 장수(장사)가 쇠지게로 지고 와서 마을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아이들이 그 바위에서 놀다 다칠까봐 다시 쇠지게에 지고 산으로 옮기던 중 쇠지게가 부러져 지금의 자리에 놓이게 되었다 한다. 허씨 집안에서는 이 기차바위 때문에 인재가 많이 나왔다고 믿고 있으나, 지금은 암석 채취로 거의 훼손되어 마을 사람들이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 금곡교 : 지방도 335호인 가남면 금곡리에 있으며 1972년도에 놓은 다리로 연장 10m, 폭 6m, 높이 2m 1경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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