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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임 묘

□ 소재지 : 점동면 덕평리
□ 시 대 : 조선

윤희임(?~1581)은 선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칠원이다. 안혜공 윤은경의 후손이자 호군 윤제의 현손이며 덕산군수(德山郡守) 윤세형(尹世衡)의 아들이다. 모재 김안국과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1484~1555)의 문하에서 여러 문사(文士)들과 교유하여 처사(處士)로 불리었다. 종9품 장사랑(將仕郞)의 품계에 올랐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묘는 칠원윤씨세장지의 가장 상단에 위치한다. 족보에는 묘의 소재지가 “평촌(坪村)”이라는 고지명(古地名)으로 기재되어 있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 폭 67, 두께 34), 상석(높이 22, 폭 139.5, 두께 80), 고석(높이 37, 폭 21.5, 두께 21), 향로석(높이 49, 폭 35, 두께 31) 망주석(높이 175, 폭 55, 두께 55)의 옛 석물이 진설되어 있다. 육각 향로석에는 안상(眼象), 연주(連珠)로 문양을 화려하게 꾸미고 운족(雲足)을 마련하였으며, 고석(鼓石)을 장고(長鼓) 모양으로 만든 것이 이색적이다. 망주석은 팔각 대석(臺石) 위에 운각(雲角), 염우(廉隅), 다람쥐를 조각한 팔각 주신(柱身)을 세웠다. 특히 석물 중에서 상석, 고석, 향로석, 망주석의 주신을 백대리석으로 만든 것이 주목된다. 당시에는 화강암으로 제작하는 것이 유행이었기 때문이다. 봉분 앞에는 복련(覆蓮)을 장식한 직사각형의 방부(높이 33, 폭 86.5, 두께 50)가 놓여 있다. 방부를 먼저 마련한 후, 비신을 세우려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건립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피장자의 신원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족보 자료와 후손의 증언을 통해서 윤희임 묘소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희임 묘 바로 아래에는 증조부 병조참지 윤신우와 조부 희천군수 윤양좌의 묘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또 동쪽의 맞은편 구릉에는 5대조인 낭장 윤광우의 묘가 있으며, 우측 구릉의 안쪽에는 백부 성균생원 윤우형(尹友衡)의 묘가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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