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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남 묘

□ 소재지 : 북내면 장암리 348-1
□ 시 대 : 조선
□ 지정사항 : 향토유적 제3호

원유남(1561~1631)은 인조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원주, 자는 관보(寬甫)이며 충장공 원호의 아들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이어 1586년 무과중시에도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권율(權慄, 1537~1599)의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1596년 강원·충청 등의 조방장(助防將)을 지냈다. 또 이듬해 정유왜란이 일어나자 분의복수군(奮義復讐軍)의 장령(將領)으로 활약하였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되고 원계군(原溪君)에 봉해졌다. 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유도대장(留都大將)이 되어 윤방(尹昉, 1563~1640)과 더불어 도성을 방어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묘는 장암리 아랫말의 소산사(蘇山祠) 뒤쪽에 위치한 원주원씨세장지 내에 위치한다. 묘역에는 혼유석(높이 2, 폭 98.5, 두께 42.5), 상석(높이 44.5, 폭 130, 두께 92), 향로석(높이 37, 폭 37, 두께 26), 망주석(높이 172, 폭 40, 두께 40)의 옛 석물이 간소하게 갖추어져 있다. 향로석에는 당초문(唐草紋)과 운족(雲足)을 조각하고, 망주석의 상단에는 운각(雲角)과 염우(廉隅)를 장식하였다. 봉분 앞에 방부개석 양식의 묘표(총 높이 176)가 건립되어 있다. 백대리석 비신의 위쪽 폭이 아래쪽보다 넓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팔작지붕의 개석과 복련이 새겨진 방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비신(높이 128, 폭 61.5, 두께 17.5)의 앞면에 큰 해서로 “유명조선(有明朝鮮) 정사공신(靖社功臣) 정헌대부(正憲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원계군(原溪君) 증우의정(贈右議政) 시충숙(諡忠肅) 원공휘유남묘(元公諱裕男墓) 정경부인(貞敬夫人) 상당한씨(上黨韓氏) 부전(祔前)”이라고 하여 피장자의 신원을 밝히고 있다. 묘표음기는 비신의 뒷면과 좌측면에만 각자하였으나 표제와 찬서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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