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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섭

경상북도 예천(醴泉) 출신으로 호는 묵랑(墨浪)이며 자는 응필(應弼)로 용국(用國), 용휴(用休)라고도 썼다. 아들 한양이(韓良履)와 함께 의병운동에 참여하였다. 1895년 10월 일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고 12월 30일에는 단발령이 내려지자 1896년 1월 문경에서 의진을 구성한 이강년의진에 입대하여 참모관(參謀官)에 임명되었다. 동지 수백 명과 함께 달아나는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과 순검 이호윤(李浩允)·김인담(金仁覃) 등 3인을 생포하여 농암(籠巖)시장에 운집한 군중 앞에서 이들의 매국행상을 규탄하고 효수하였다. 1월 15일 문경 마고성(麻姑城)에서 적군과 접전하였으며, 2월 이후 유인석 연합의진에 편입되어 7월 해산될 때까지 충북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정미의병운동 때도 역시 이강년의진에 소속되어 문경·여주·갈평(葛坪) 등지에서 적과 교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82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다시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 ;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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