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坡州) 출신으로 1907년 여주군 흥곡면(興谷面)에서 정미(丁未) 7조약의 강제체결에 통분, 임행숙(林行叔)과 함께 거의(擧義)하여 100여 명의 부하를 인솔하고 이천군(利川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한다. 1919년 4월 10일 중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밀파된 강태동(姜泰東)이 황종화(黃鍾和)에게 전달한 독립문서인 ‘적(敵)의 관리(官吏)인 동포에게’라는 격문 200여 매와 독립운동 참여를 촉구하는 포고령 제1호 ‘남녀 학생에게’라는 격문 200여 매를 경기도내 각지에 배포하라는 임무를 받아 활동하였다. 1992년에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93,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10 ;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자료집』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