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선조 25) 영덕현령으로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7년 나주목사가 결원일 때 선조가 안진에 대해 묻자 김명원(金命元)이 느슨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1598년 여주목사로 부임하여서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것을 일삼아 온 지역의 백성들이 사방으로 떠돌아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이듬해 함경북도우후가 되었으나 나이가 많고 쇠하여 체직되었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1592년(선조 25) 영덕현령으로 임진왜란을 맞았다. 1597년 나주목사가 결원일 때 선조가 안진에 대해 묻자 김명원(金命元)이 느슨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1598년 여주목사로 부임하여서는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것을 일삼아 온 지역의 백성들이 사방으로 떠돌아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이듬해 함경북도우후가 되었으나 나이가 많고 쇠하여 체직되었다.
□ 참고문헌 : 『선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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