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고령이며, 영천위(靈川尉) 신의(申檥)의 아버지이다. 1539년(중종 34) 함창현감을 지냈으며, 1541년 길례(吉禮) 때 예물과 복식의 지나친 사치로 물의를 빚었다. 윤원로, 임백령(林百齡) 등과 결탁하였다. 1545년(인종 1) 김포현령에 재직 중 대간의 탄핵으로 체직되었다. 명종 즉위 후 원종공신 3등에 녹선되고 당상관이 되었다. 1547년(명종 2) 여주목사가 되었으나 인종(仁宗)의 복수산(卜壽算)·원군상(怨君上)·사내인(私內人) 등의 일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면하고 강원도 통천군에 유배되었다가 1551년 방환(放還)되었지만 관직에 복귀하지 못하였다.
□ 참고문헌 : 『중종실록』, 『명종실록』, 『선조실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