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회(子懷), 호는 동원(東園)이며, 헌납 김덕승(金德承)의 아들이다. 1682년(숙종 8) 춘당대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85년 봉교(奉敎)가 되었고 이듬해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정언이 되었다. 1687년 지평으로 승진하였으며 도당록(都堂錄)에 올랐다. 1688년에는 고부사(告訃使)의 서장관으로 청(淸)에 다녀왔다. 1694년 황해도관찰사에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승지·예조참의·여주목사·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한편 영월루 근린공원내의 역대 여주 수령 선정비군에는 조선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김홍복의 청덕애민영세불망비(淸德愛民永世不忘碑)가 있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여주읍지』(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