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대의 충신으로 여주군의 남쪽 30리 지점인 근남면(近南面)에 거주하였다. 관직은 첨사(僉使)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들 고응익(高應翼)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죽산(竹山)으로 향하는 왜적을 맞아 전투를 하려는데 뱀 한 마리가 말발굽을 옭아매고 있어 종자(從者)가 힘써 만류하며 “적진에 임해서 뱀이 말발굽을 옭아매고 있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징조이므로 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에 고세두는 “적이 날로 번성하여 사세가 심히 급박한데 어찌 가지 않겠는가” 하고 적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사후 첨정(僉正)에 추증되고 충신 정려(旌閭)를 하사 받았다.
□ 참고문헌 : 『여주읍지』(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