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수이(守而), 호는 회곡(晦谷)이다. 참판 조문수(曺文秀)의 아들이며 택당 이식과 사계 김장생의 문인이다. 1637년(인조 15)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1640년(인조 18) 청(淸)이 명(明)에 대한 공격을 위해 원병 파견과 원손(元孫)을 볼모로 심양(瀋陽)에 보내라고 하자 이를 반대하는 만언소(萬言疏)를 올렸다. 이에 배청파(排淸派)로서 김상헌(金尙憲), 채이항(蔡以恒) 등과 함께 청의 심양(瀋陽)에 잡혀가서 심한 고문을 받고 투옥됐다. 이때 김상헌과 『설고집(雪┱集)』을 공동으로 지었으며 1642년(인조 20) 의주에 이감 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현종 때 한성부우윤이 되어 하흥군(夏興君)에 습봉(襲封)되고, 형조와 예조의 참판과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한성부좌윤에 이르렀다. 문장이 뛰어났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며 부조지전(不祧之典)을 받았다. 여주 고산서원(孤山書院)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저서(著書)로 『회곡집(晦谷集)』이 전한다. 묘는 대신면 장풍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국조인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