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계취(季就)이고, 현감 조명억(曺命億)의 아들이다. 1785년(정조 9)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교리·사간·집의 등을 거쳐 1804년(순조 4) 대사간이 되었다. 1812년(순조 12) 여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은 듯하다. 이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동지사로 청(淸)에 다녀왔다. 묘는 대신면 무촌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순조실록』, 『국조방목』, 『여주군지』(1989)
조선 순조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계취(季就)이고, 현감 조명억(曺命億)의 아들이다. 1785년(정조 9) 문과에 급제하여 현감·교리·사간·집의 등을 거쳐 1804년(순조 4) 대사간이 되었다. 1812년(순조 12) 여주목사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은 듯하다. 이후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동지사로 청(淸)에 다녀왔다. 묘는 대신면 무촌리에 있다.
□ 참고문헌 : 『순조실록』, 『국조방목』, 『여주군지』(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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