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창녕, 자는 치용(稚用), 호는 연암(烟巖)이고, 사과 조용진의 아들이다. 1835년(헌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이조참판에 올랐다. 1853년(철종 4) 경상도관찰사가 되고 이듬해 고조부(高祖父) 조하망의 문집(文集)인 『서주집(西州集)』을 간행했으나 내용 중에 송시열을 비난한 글을 삭제한 것이 말썽이 되어 중화(中和)에 유배되었다. 1857년(철종 8) 풀려나 공조참판에 오른 후 대사헌을 거쳐 1867년(고종 4) 이조판서가 되었으며 좌찬성에 이르렀다. 글씨에 뛰어났으며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 참고문헌 : 『철종실록』, 『일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