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숙경(叔經)이다. 민유중의 7세손이자 민치화(閔致和)의 손자이며 민원용(閔元鏞)의 아들이다. 1848년(헌종 14) 증광문과(增廣文科)에서 장원하였으며 1865년(고종 2)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 1869년 사헌부대사헌에 제수되고 양관제학(兩館提學)을 거쳐 의정부좌찬성에 이르렀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명성황후를 여주에 있는 자택에 피난시켰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매천야록』, 『여흥민씨삼방파보』, 『여주읍지』(1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