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고종대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이고 자는 백수(伯叟)이다. 민시중의 7세손이자 민치원의 손자이며 민성호(閔性鎬)의 아들이나 민만용(閔萬鏞)의 계자(繼子)가 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음서로 감역(監役)이 되었으며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1899년 민사국장(民事局長) 등을 거쳐 1900년 회계원경(會計院卿)이 되었다. 1901년 궁내부협판이 되었고 1903년 지계 문제로 견책을 당했으나 1904년 동지돈녕원사(同知敦寧院事) 등을 거쳐 충청도관찰사에 임명되었고, 1906년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가 되었다.
□ 참고문헌 : 『여흥민씨삼방파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