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리의 해주 정씨는 1525년에 6세 흥경(興慶)이 가남읍 남문곡(南文谷)에 정착한 후 이곳으로 분가하였다. 정광익(鄭匡翼, 1825~1867)은 효성이 지극하고 3년간 시묘살이를 하여 그 효행을 기리기 위해 정려문이 하사되었다. 태평리 마구실 마을 서쪽 끝 고개 좌측에 세운 정려각 안에 1892년에 내려진 정려판이 있다.
『조선의 성』의 자료를 참고하면 해주 정씨는 가남면 대평리(大平里, 현 가남읍 대신리)에 17호가 산다고 하였고, 1985년 경제기획원 통계에 의하면 태평리에 44호가 산다고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