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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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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현종대의 무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징지(澄之), 호는 매죽헌(梅竹軒)이고, 인조 때 공신인 계림부원군 이수일(李守一)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무과에 급제하여 만포첨사가 되었고 영유현령·상원군수·숙천부사·한성부좌윤·평안도절도사·함경남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650년(효종 1) 어영대장이 되었다. 수어사로 있을 때 휘하의 문관이 죄를 지어 죽게 된 일이 있었는데 인선왕후를 통해 구명을 사청(私請)했으나 거절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의 집이 낙산 밑의 인평대군(麟坪大君) 집과 이웃해 있었는데 훈련대장으로 임명받자 바로 집을 옮겨버렸다. 왜냐하면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 왕족의 이웃에 산다는 것은 법도가 아니라는 그의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공조·형조판서를 역임하고 1674년(현종 15) 5월 우의정이 되었으나 그다음 달에 죽었다. 

무장으로 입신 후 효종에게 발탁되어 송시열과 함께 북벌에 매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시호는 정익(貞翼)이고 묘는 여주시 상거동에 있다. 1899년에 편찬한 『여주읍지』의 명환편에 등재되어 있다.

□ 참고문헌 : 『인조실록』, 『효종실록』, 『현종실록』, 『여주읍지』(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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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