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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류는 양화나루에서 전북리까지를 이름이다. 그 증거로 모재 김안국 시에 「양화 나루에서부터 여흥의 경계이네」라는 시가 있다.

본 천령현으로 군세와 인물들이 대단하였지만 영릉이 여흥으로 옮겨오면서 합병되어 여주가 되었지만 이곳 사람들이 합병 초기에는 반발이 상당한 것으로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기류에는 많은 유적이 있었으나 모두 인몰하여 없어지고 전설에 의해 조금씩 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팔영이 아주 많은 편이다. 「금사팔영」이 두 편이나 되고 「이포팔영」, 「궁촌팔영」, 「사전팔경」 등이 있고 누대로는 침류정, 육우당, 봉서정, 범사정, 망포정, 금강루, 침벽루 등이 있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없다. 그래도 기류하면 침류정이 단연 으뜸이다. 동정 염흥방이 주인으로 되어 있으나 원 주인은 동정의 외조부인 이암 권공의 정자이다. 이암이 자식이 없다보니 자연 동정이 관리하게 되었고 주인이 된 것이다. 그럼 동정의 침류정시 4편 중에 두 편만 골라서 소개하기로 하자.

 

시주를 벗을 삼아 노시길 백년이 된
詩酒歡娛近百年
고인의 유적이 이 산촌에 있었다네
古人遺迹在林泉
십여 년의 화려한 벼슬길을 버리고
紅塵十載銀臺罷
이암공의 취미를 애써 배우려 한다네
爭似伊庵一醉眠

 

동정의 외조부 이암공이 세상사 모두 팽개치고 시와 술로 시름을 달래며 근 백년 노시던 곳을 당신도 십 년 이상 시끌벅적하던 정승자리를 그만두고 이곳에 와서 이암공이 즐기시던 그대로 애써 배우려 한다고 했다. 동정은 문무가 겸전한 당시의 명망가로서 새로운 세력(이성계)의 눈에 가시가 되어 실각한 인물이다.

첫구는 침류정에 오게 된 동기와 시작을 서술하였고, 다음 구는 침류정의 풍경과 생활을 말하였다.

 

금사거사의 침류정에는
金沙居士枕流亭
버드나무 그늘이 아주 시원하다오
楊柳陰陰署氣淸
진세의 아귀다툼은 들여오질 않고
洗耳不聞塵世事
오직 베개 머리에 개울물 소리뿐이오
孱孱只有小溪聲

 

동정의 시 4수를 모두 옮기고 싶지만 지면이 없고, 척약재(惕若齋) 김구용(金九容)의 「동정상공 침류정 운을 차운한다」를 살펴보면 8수나 되지만 역시 두 수만을 골라보았다.

 

멀리 남쪽으로 간 지 3년이나 되었는데
遠遊南國己三年
예천으로부터 금사로 옮겨오게 되었다네
移旆金沙自醴泉
다행하게도 이암의 유적이 있는 곳이라
幸有伊菴遺跡在
침류정 위에서 책을 베개 삼아 누웠구려
枕流亭上枕書眠

 

이 시는 동정이 처음에는 예천으로 유배를 갔다가 이곳 금사로 옮겨오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행하게도 외조부인 이암의 침류정이 있어서 취미를 붙이고 살만하다는 뜻이다.

척약재도 유배살이와 같은지라 반은 그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다음 수에서는

 

못을 파고 버들 심고 작은 정자를 지었는데
鑿池栽柳構茅亭
안개가 몽롱하여 쉽게 개이질 못하네
蒼翠濛濛不肯晴
갑자기 화려한 정승 자리를 그만두고
忽破銀臺花月夢
녹음 우거진 버들에서 꾀꼬리 소리만 듣다니
綠陰時有一鸚聲

 

당시 신진 세력들이 정적을 몰아내면서 기성세력들을 청산해야 나라가 개혁이 된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못 파고 버들 심고 정자 지었다는 것은 동정 같은 수구들이 모두 정자 짓고 숨었다는 것인데 안개가 아물아물 개일 것 같지 않다는 것은 그렇게 되었는데도 나라 앞일이 캄캄하여 도무지 밝아질 것 같지가 않다는 의미인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도 똑같다는 것이다.

둔촌(遁村) 이집(李集)과 척약재 사이에 주고받은 시 몇 수만 소개해 본다.

둔촌의 시에

 

저무는 밤 이슬바람이 촉촉이 부는데
暮天風露灑霏微
외로이 노 저으며 낚시 늙은이 찾아가네
閑棹孤舟訪釣磯
삽작은 열려있으나 사람소리 조용해서
柴戶半扃人正寂
동자를 불러 물어보니 달뜨는 밤에나 온다네
呼童還問月中歸

 

당시 둔촌도 피하는 몸이 되어 천령으로 숨어 와서 도미사에 우거하고 있었다. 도미사는 전북리 강 건너 강가에 있는 절이다. 둔촌의 시에 보면 강을 마주하고 북쪽으로 십리허에 있다 하였으니 금사리에서 거기까지는 십리는 족히 된다. 둔촌이 거기서 이슬이 촉촉이 내리는 밤에 혼자서 노를 저으며 금사리로 척약재를 찾아오고 있다. 척약재가 자기를 자칭 낚시하는 늙은이로 부르고 있다. 척약재는 이렇게 화답하는 시를 지었다.

 

달 밝은 밤 강바람에 더운 기가 없는데
月色江聲暑氣微
늙은 어부가 가끔 낚시터를 찾아가네
老漁時復近苔磯
낚시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자니 밤이 조용한데
收絲捲棹人無事
혼자서 배 저으며 느릿느릿 돌아오네
穩放輕棹緩緩歸

 

옛부터 어진 사람들이 물에서 고기도 잡고 혹은 들에서 밭을 갈며 숨어서 사는 이가 많았다. 예를 들면 순임금이 역산에서 밭을 갈며 살았고, 태공이 위수에서 낚시하고 살았으며, 이윤과 부열이 막노동 품팔이를 하였고, 제갈공명도 남양에서 농사를 지었다. 척약재는 여말에 학문과 경륜이 높은 학자이다. 그러나 세상이 당신을 시기하니 어쩌랴. 하는 수 없이 모두 잊어버리고 우거하고 있는 집에 육우당이라 현판하고 낚시하는 강늙은이로 자칭하며 살기를 원하고 있다. 둔촌이 또 보내는 시에는

 

강루 높은 곳에 그대가 살고 있는데
江樓高處是君居
강언덕을 마주한 것이 한 십리 된다네
隔岸相望十里餘
배만 타면 자주 왔다갔다 할 것이니
一棹往來應數數
나도 이 근처에 집이나 짓고 살아야지
此間吾亦結茅廬

 

척약재의 화답하는 시에는

 

진작부터 황려에서 같이 살기로 하였는데
曾會黃驪共卜居
남북으로 바쁘게 다닌 것이 한 십년 되었다네
奔馳南北十餘年
지금에야 처음으로 평생의 뜻 이루었는데
如今始遂平生志
아직도 강가에 집을 세우지 못했다네
猶自江邊未構廬

 

둔촌도 멀지 않는 곳이니 조그만 집이나 하나 짓고 이웃해서 살게 되면 옛 약속도 지키고 속세의 시끄러운 소리도 멀리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다. 척약재는 이미 세상과는 단절하고 눌러 살기를 결심한 것 같다.

목은 역시 이곳에 살고 싶다는 뜻으로 둔촌이 척약재에게 보낸 시의 「운을 차운한다」에서 보면

 

사우당에 사우거사가 살고 있는데
四友堂中居士居
천하의 맑은 홍취는 모두 차지했네
滿天淸興更無餘
기강의 곳곳에 기이한 경치가 많은데
沂江處處多奇絶
나도 잔생을 이웃하여 집하고 싶어라
欲乞殘生對結處

 

목은은 여강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여주에 와서 살고 싶어 하는 흔적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걸해’라는 말이 나오는데 걸해란 왕에게 사직을 승낙 받는다는 뜻인데, 이 시에서 사직이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반대 세력들은 눈에가시처럼 생각하지만 왕이 놓아주지 않아서 차마 낙향을 못한 것 같다.

다음은 모재 김안국의 「금사팔영」을 살펴보자. 모재가 윤서파에게 준 팔영만도 두 편 이상이 있는데 그 중 하나만 옮긴다.

 

동호범장(東湖帆檣)
범선이 매일같이 가볍게 오가는데
風帆日日過如奔
서계에 은자 있는 곳을 다투어 알려하네
爭識西溪有隱村
복사꽃일랑 부디 물 따라 보내지 마라
莫遺桃花流水出
고기잡는 어부들이 찾아올까 두렵다네
怕逢漁客解尋源

 

동호란 금사리 앞 한강을 말함인데, 무릉도원을 빗대어 어부들이 복사꽃을 따라 찾아올까 두렵다고 하였다.

이런 고사는 도연명의 무릉도원에서 나오는 말이다. 세상에 알려지면 별의별 속객이 모두 찾아옴을 경계하는 말이다.

 

서봉남수(西蜂嵐水)
누가 저렇게 조회하듯 서 있을고
何人柱笏望朝朝
철이 지나도 서늘한 기운 소멸됨을 알지 못하네
不判非綠爽氣消
오래도록 가을 모습만 보이는 것이 싫어서
久厭秋容資郎話
문득 봄빛 단장으로 다시 솟았다네
却將春態伴孤標

 

서봉은 하호마을 뒷산으로 다소곳이 솟아 있다. 매일같이 같은 모양으로 서 있다 보니 겨울이 된 줄도 모르고 푸르스름한 남취만 발하고 있는데 봄 같은 모습으로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남취는 겨울에도 봄같이 보일 수 있다.

 

남계수조(南溪垂釣)
고기 맛은 알아도 미처 어구를 준비하지 못해서
知魚未暇瓣濠梁
뛰노는 고기무리를 정신없이 보고만 있네
耽看遊鱗曜鏡光
장난삼아 낚시줄을 물속으로 던졌더니
戱把纖綸投日夕
우연히 올라온 은빛이 술상을 돕고 있네
偶然銀絲佐賓觴

 

고기를 먹을 줄은 아는데 투망이나 통사리 같은 어구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낚시를 무는 놈이나 잡아먹지 그물이나 통사리로 싹쓸이 식으로 잡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고기를 먹는 것은 탐을 낼지 몰라도 잡는 데는 별로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북간탁영(北澗濯纓)
울타리 북쪽에 옥소리 같은 물소리에
籬北琮淨玉佩聲
지팡이 끌고 하루 종일 그곳을 맴도네
携笻終日澗邊行
때도 없는 갓끈을 굳이 씻을 일은 없고
無塵豈爲纓須濯
맑은 물이 좋아서 거울삼아 나를 보고 있네
愛弄淸流鑑髮明

 

굴원의 「어부사」에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이나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는다”에서 나온 말인데 물이 맑다는 의미도 있다. 북간은 소유리 골짝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갓끈에는 아무 때도 없으니 씻을 필요가 없고 맑은 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속세의 때가 있나 없나 살펴보라는 것이다.

 

봉암조망(鳳岩眺望)
층층바위 그림같이 천길이나 솟았는데
層巖如畵聳千尋
한구비 돌아앉으니 난세가 푸른 못을 굽어보네
一曲鸞環俯碧深
구름 걷히고 뾰족한 산들이 하늘가에 둘러섰는데
雲盡山尖天宇廻
몇 번이나 돌아와야 깊은 회포를 풀 수 있을고
幾回凝立山幽懷

 

난새는 봉황새와 같은 종류의 새인데 그 바위 모양이 난새가 둥지에 앉아서 푸른 못을 굽어보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구름이 개이고 나니 뾰족뾰족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는데 몇 번쯤 돌고 와서 저 산처럼 서 있어야 가슴속 깊이 간직한 회포들을 풀 수 있을까 하였다. 봉암은 하호마을 앞 다리 옆에 있는 바위지만 지금은 유원지가 되었다.

 

용담욕영(龍潭浴泳)
가벼운 봄옷 입고 망건을 벗어버리고
輕杉初試岸輪巾
맑은 물 하나 가득 꽃 비친 모춘일세
花覆澄潭正暮春
돌아오면서 긴 소리로 노래를 부르는데
欲罷歸來空浩詠
다시는 진흙탕 속으로 가지 말아야지
此身寧更涴街塵

 

이 시는 『논어』의 “욕호기 풍호무우(浴乎沂 風乎舞雩)”에서 나온 말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뜻을 물었다. 모두가 대답하기를 어려운 정국을 만난 나라에 가서 정치를 맡아 한바탕 잘 해보겠다고 하는데 중점만은 다르다. “늦은 봄 봄옷을 갈아입고 기수에 가서 목욕하고 무우에 가서 바람 쏘이고 노래하며 돌아오겠다”하였다. 공자도 “나도 너와 같이 하리라” 하여 유명하다.

모춘에 가벼운 봄옷 입고 망건을 벗어부치고 용담에 목욕하고 노래 부르며 돌아오면서 다시는 진흙탕 정치판에는 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기류라는 기자도 여기서 나왔다.

 

연지명월(蓮池明月)
연향이 살짝 계향과 섞이어 있는 것은
荷香暗襲桂花香
하늘의 달이 작은 못에 잠겼기 때문이요
天月臨輝浸小塘
아무도 없이 조용히 절경과 마주하니
靜寂無人酬絶景
술 한 잔 부어 멀리 오강에게 드리고 싶네
一杯遙屬老吳剛

 

연꽃 향기가 계수나무 꽃향기와 섞이어 나는 것은 달이 못에 잠겼기 때문에 달에 있는 계수나무 향기가 같이 난다는 것이다. 오강은 중국 한나라 사람으로 신선이 되겠다고 산으로 가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렇게 신선이 되고 싶거든 “달에 가서 계수나무를 베어 보라”했다. 그래서 이 좋은 경치에 있으니 신선이 된 것 같아서 오강이 생각난다는 것이다.

 

죽오청풍(竹塢淸風)
솔솔 부는 바람이 대숲을 흔드는데
颯颯蕭蕭撼竹林
겨우 낮잠에서 깨어나 옷깃을 여미네
午眠罷起纔披襟
더위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찌 이 맛을 알겠나
人間歊熱寧知此
혼자 맛본 시원함이라 혼자 찾아 즐기네
一味淸凉喜獨尋

 

대숲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에 옷깃을 헤치고 낮잠을 즐기는 이 신선 같은 재미를 서울에서 체면때문에 정장을 하고 땀을 흘리고 있는 벼슬아치들이 어찌 짐작이나 하겠느냐고 “진짜의 멋이 이것이다”라고 노래한다. 다음은 범사정을 보자.

 

범사정(泛槎亭)
한가롭게 둥둥 떠 있는 범사정은
閑閑泛泛一仙槎
가야할 곳도 없어서 창파에 맡겨 두었네
無滯無心任碧波
아무 것도 실은 것이 없으니 풍랑도 걱정도 없고
虛載豈虞驚浪覆
동풍만 불어주면 은하수에나 가볼까 하네
東風輕颺上天河

 

범사정은 모재 선생의 정자로 이포 농협 앞 느티나무 근처라 짐작된다. 기천서원지에 “모재서원을 범사정 우록에다 옮겨 세운다”라고 하였으니 말이다. 예전에는 강물이 이곳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완전한 호수 같아서 물이 넓고 깊었다 한다.

선사란 신선이 타고 다니는 떼배를 말함인데 물에 떠 있는 떼배 같은 정자는 어디로 가겠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물결의 출렁임에 따라 흔들흔들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인간세상에는 가볼 만한 곳이 없고 동남풍이 불어주기만 하면 하늘의 은하수에나 가볼까 한다고 하였다. 이쯤 되면 고인들의 풍류가 어디까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의 문맥으로 보아 강상 누각으로 생각된다.

서애 유성룡과 파사성은 남다른 감회가 있다. 임진란 당시 왜군의 일대는 죽산·용인을 거쳐 서울로 향했고, 일대는 충주·여주로 해서 서울로 집결했다. 그 후 경기감사 변응성이 파사성을 견고하게 수리하여 수도방어에 써야 한다고 주청하였다. 서애는 당시 영의정으로 그 계책에 찬성을 하면서도 전쟁 후라 힘이 부족하여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러나 황해도 승병총섭인 의암이 전쟁이 끝나 갈 곳이 없는 승병들을 모아 이 성을 수리하여 제법 규모가 완전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서애가 달려와 보니 고맙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의암과 하룻밤 같이 자고 지은 시이다.

 

숙파사성등금강루(宿婆娑城登襟江樓)
산에 오르고 물에 임하니 정취가 호연하여
客子登臨情浩浩
큰 소리로 노래하니 산돌이 찢어지네
高歌一聲山石裂
바람은 동쪽 봉우리에 달을 밀어 올리고
長風吹上東山月
만리 창공은 한 모양으로 푸르구나
萬里天容一樣碧
나 한 세상 유유히 살아왔는데
我生於世眞悠悠
남북으로 다니다보니 백발이 성성하네
北去南來成白髮
풍진 세상에 노병은 찾아오고
風塵天地老病催
집으로 돌아가려니 탄식만 나오네
宇宙歸來空嘆息

 

금강루는 파사성의 문루인 것 같다. 객자가 루에 올라와 보니 호기가 생겨서 큰소리로 노래를 했더니 산에 돌이 찢어진다고 했다. 이 말은 한때 국정을 한 손에 쥐고 천하를 좌지우지할 때 동산에 달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한마디 호령이면 모두가 따라오고 또 찢어지고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나라 근심하여 동서남북으로 정신없이 왔다갔다 하다 보니 백발이 성성하게 되었다. 막상 집으로 돌아가려 하니까 지난날의 일들이 공허한 것 같아서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다음으로 수암의 고산추영을 다시 한 번 보자.

 

고산추영(孤山秋詠)
하늘 밖의 기러기 가을소리 전해오고
天外秋聲雁帶來
칡넝쿨 우거진 속에 작은 암자 있네
碧羅叢裏小菴開
맑은 못가에는 씻은 듯 흰모래 있고
瑤潭露洗寒沙淨
옥동 여기저기엔 뒹구는 낙엽이 쌓이네
玉洞霜飄亂葉堆
중은 구름을 짝하여 절로 향하고
僧伴宿雲歸遠寺
나그네 달을 따라 대에 오르네
客隨新月上高臺
산늙은이 술에 취해 높이 잠들었는데
山翁醉後成高眠
두다가 둔 바둑알들이 이끼 위에 흩어져 있네
牀下殘棋散綠苔

 

수암은 전편에서도 소개한 바 있지만 시사의 표현이 아주 뛰어나다. 마치 한 폭의 문인화를 보는 것 같다.

하늘 밖으로부터 기러기가 끼룩끼룩하면서 가을 소리를 전하고 있는데 갈대꽃과 칡넝쿨들이 이리저리 가려있는 작은 암자가 있다. 분명 세속사람은 다니지 않는 신선의 집인 것이다.그 곁으로 옥처럼 맑은 못이 있고 물에 씻은 듯 한 흰모래가 펼쳐져 있으며 낙엽도 인간의 손으로 쓸지 않은 채 멋대로 뒹굴고 있다. 스님은 구름 짝하고 절로 가는데 나그네는 초생달을 따라 대에 올라간다. 늙은이는 취하여 높이 잠이 들었는데 두다가 둔 바둑알들이 파란 이끼 위에 흩어져 있다. 이 시만 보아도 상상속으로 한 폭의 그림이 선명하게 펼쳐진다. 기류의 마지막으로 풍고 김조순의 시를 소개한다.

 

자이호소양화(自梨湖遡楊花)
노를 두드리며 양화나루를 지나는데
鼓枻楊花去
일엽편주가 봄바람에 가볍구려
微風一葉輕
고기 잡는 일도 생업일 바에는
捕魚元可業
하필 벼슬만이 영화스러운 일인가
結駟豈專榮
여울이 서둘러 흐르니 비오는 소리 급하고
灘轉雨聲急
못은 비었기에 산 그림자 가득하네
潭虛山色盈
방초 우거진 쪽을 구경하노라니
忽看芳草外
나는 왜가리 배 돛대를 치고 가네
飛鷺㹁舟棖

 

풍고는 안동 김씨 세도의 시호가 되는 분이다. 순원왕후의 아버지로 영안부원군을 봉 받았고 현암서원에 봉안되어 있다. 원채 문호의 집안에서 성장하였기에 시법이 아주 포괄적이다.

여울이 급하게 흐르니까 물소리가 마치 아우성 같고 못이 비어 있으니까 모든 산 그림자가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한 세상을 요리한 정치인다운 말이다. 민심이란 급하게 몰아 부치면 반드시 저항의 아우성이 있게 마련이니 비우고 겸손해야 민심이 모여온다는 교육적인 뜻이 숨어 있고,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왜가리가 돛대를 치고 갔다는 뜻은 잠시 자만에 빠져 한눈 팔다보면 치고 들어오는 허점이 있다는 아주 정치적인 뜻이 담겨 있다.

다음은 농암 김창협 선생의 시를 찾아보았다.

 

추야숙주중(秋夜宿舟中)
강한의 가을 파도가 몹시 높은데
江漢秋濤盛
외로운 배는 은하수에 뜬 것 같네
孤槎似泛河
달 오르니 돛 그림자 곧고
月高檣影直
넓은 모래밭엔 이슬 꽃이 반짝이네
沙闊露華多
강언덕 저편에는 등잔불 깜빡이고
隔岸望煙火
이웃 배에선 노랫소리 들려오네
隣船聽笑歌
물고기 또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潛魚亦不睡
배 언저리에서 작은 물결 일으키네
舷底暗吹波

 

농암은 우암계의 학자로서 도학과 문장과 명필로 유명하며 청음의 증손자요 문곡의 6창 아들 중 둘째다. 그러니 여주 사람으로 봐도 무방하다. 문곡이 대신면 율촌리에 우거하셨고 아들 몽와의 묘소와 종택이 그곳에 있으니 말이다. 나 같은 비재천식이 어찌 남의 시를 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만은 선생의 시에는 남달리 숨긴 뜻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밤이 조용해서 삼라만상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것 같지만 자강불식의 법칙에 의해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는 주역의 이치를 현실에 반영한 이른바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논다는 자연의 활발한 원리를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백이나 두보의 시들이 하나같이 풍경과 운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언외에다 본인의 철학이나 환경, 심경 같은 것들을 은연중 표시하여 두었기 때문에 그래서 명작이라 칭찬하고 있다. 여강에는 너무도 많은 주옥같은 시들이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다. 근세 인물들의 시는 고증하기 어려워 찾아 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가능하면 한 사람의 시를 한번만 쓰기로 하였으나 목은과 모재 같은 분들은 많기도 하거니와 뺄 수 없는 이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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