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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명과 여주지역 기독교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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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지역에 감리교가 전해온 경로를 살펴보면 장지내(화성군, 1893), 아라실(용인군, 1896)을 통해 덕들(이천군, 1897)에 들어와 경기 동남부중심 교회를 이루었다. 덕들에서는 세면으로 진출했다. 북으로 광주, 북동으로 이천, 동으로 여주지역으로 들어와 1898년 범솟교회가 세워졌는데1) 이 범솟교회와 맹골교회2)를 장춘명이 세웠다.

1856년 4월 7일 경기도 음죽군 설성면 송계리에서 출생한 장춘명은 키가 장대하고 체격이 우람했으며, 음성이 우렁차고 달변으로, 성격도 활달하여 그의 앞에서는 누구나 위압감에 사로잡히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1889년 미감리교회의 전도를 듣고 기독교에 들어왔으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소식을 듣고 의분에 찬 나머지 의병에 참여하여 왜군과 전투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음 해 의병이 해체되자 집으로 돌아와 1899년 3월 덕들교회에서 의병동지 구춘경과 함께 세례를 받은 후 성경, 찬송가, 교리서적을 팔며 전도하는 권서(勸書)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믿고 전도자로 나선 것은 단순한 신앙차원에서가 아니라 구국차원에서였다. 의병동지들을 찾아다니며 예수 믿고 나라를 구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의병동지들도 크게 호응하여 그의 전도사업은 큰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그가 다니며 성경책을 팔고 전도한 곳은 여주를 비롯하여 이천, 장호원, 용인, 양지, 양평, 죽산, 음죽, 진천, 충주, 원주, 제천 등지였다. 처음에는 스웨어러 선교사의 권서(勸書)로 성경을 팔며 전도를 시작하여 1904년에 여주읍 교회에 파송되었다.

 

1904년에 삼군에 개신학교(開信學校)를, 청안리에는 소성학교(韶成學校)를, 여주읍에는 여흥학교를 세웠다. 여흥학교는 1910년에 폐교되었으나 이는 여주공립보통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구춘경은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천, 광주, 장호원, 여주 등지를 순회하면서 군중집회를 통한 구국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일본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조약체결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였으며 국권수호를 위해 국민들의 단결을 호소하고 시장철시를 통한 비폭력 저항운동을 주도했다.3) 구춘경과 장춘명은 의병동지로서 이천지역은 구춘경이 맡고, 여주지역은 장춘명이 담당한 것으로 보아 여주지역에서의 모든 집회는 장춘명 주도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학교를 설립하고 구국운동을 위한 집회를 개최한 것 등을 보면 의병이었던 장춘명이 이제 애국계몽운동가의 모습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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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