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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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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의병으로 본적은 여주이다. 1895년 단발령의 공포로 전국의 유림이 주축이 되어 의병운동이 전개되었다. 1896년 1월 춘천에서도 이소응이 거의하자 이에 가담하여 아장(亞將)으로서 춘천부를 공격하여 관찰사 겸 선유사로 부임하는 조인승(曺寅承)을 잡아 처단하였으며, 서울 진격을 계획, 출동하여 가평 벌업산전투에서 관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의병의 열세로 패하고 말았다. 이에 이소응은 지평 감역 맹영재(孟英在)에게 원병을 청하려고 지평에 갔다가 유인석의 제천의진에 합류하고 이소응의 종제(從弟) 이진응(李晉應)·이경응(李景應)이 춘천의진을 맡아 싸우다가 이진응이 약사원에서 전사하자 이경응이 대장을 맡아 싸웠으나 패하여 강릉의진으로 합세하였다. 의병전쟁 패전 후 이만응은 가족과 함께 금사면 주녹리 산중에 은거하여 생활하다가 6촌인 이민응(李敏應)이 대신면 보통 1리 조성환의 생가를 사주어 여기서 살다가 1938년 별세하였다. 묘는 양평군 개군면 앙덕리 8-4에 위치하고 있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 참고문헌 : 김승학, 1965, 『한국독립사』, 독립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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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