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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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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출신으로 권오순(權五淳)이라고도 불렸다. 1929년 2월 18일에 충북 충주군(忠州郡) 읍내리(邑內里) 금성여관 주인인 정운자(鄭雲慈)의 집에서 안동규(安東奎), 김학원(金學元), 정진복(鄭鎭福), 서상경(徐相庚), 서정기 등과 함께 잡지 문예운동을 간행한다는 목적으로 문예 운동 사인결사를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표면으로는 문예부흥을 위한 잡지를 발간한다고 하였으나 이들은 무정부주의를 신봉하며 일본의 군국주의를 부정하였다. 또한 인류는 모두 절대 자유 또는 평등하다는 인류평등원칙에 입각하여 현대의 국가 조직이 이 사실을 위배한다면 이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일본의 식민지 사상에 반기를 들었다.

한편 충주에서 정미소를 경영하던 김현국(金顯國)을 포섭하는 등 은밀히 세력을 확장했으나 곧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압송된 그는 법정에서 “나는 무정부주의자로서 내가 신봉하는 그 주의는 인류는 모두 절대로 모두 평등할 것을 요하며 따라서 현재의 국가 조직은 그 주의에 배반하는 것이다”라고 담대히 외쳤다. 그는 1930년 3월 12일에 징역 5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에 건국포장이 수여되었으며, 1990년에 다시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 참고문헌 : 국가보훈처, 1986,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공훈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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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