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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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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여흥이며, 치억(致億)의 아들로 민치덕(閔致悳)에게 입양되었다. 1882년 미국에 가서 1887년까지 6년간 교육을 받고 귀국하였다. 현감(縣監)을 지내고 1891년 증광시(增廣試)에 병과로 급제한 뒤 사간, 사정, 예조참의를 거쳐 1895년 궁내부참서관, 제용원장(濟用院長) 등을 역임하였다. 심순택(沈舜澤) 내각에서 참의교섭통상사무로 들어가 인천에 가서 중국측과 동학농민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개입을 처리할 방책을 논의하였다. 1896년 외부교섭국장, 중추원의관, 학부·농상공부협판을 거쳐 이듬해 이후 1년 7개월간에 걸쳐 영국·독일·러시아·이탈리아·프랑스·오스트리아 등지에서 공사관 참서관으로 근무하였다. 1899년 한성판윤·외부협판 1902년 육군참장·통신원총판으로 통신 기관의 정비와 우정(郵政) 사업의 확장 등에 종사하였다. 이어 예식원부장, 경기·강원도관찰사, 제도국총재, 규장각지후관, 1906년 국내부특진관·수학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국권상실 뒤 일본으로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었다.

□ 참고문헌 : 『고종실록』, 『여주군지』(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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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3.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