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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철종

  • 1850년(철종 1):여주목사 이규헌을 정배하고 파직함
    • 내용 : 경기감사 김기만(金箕晩)을 중화(中和)에 정배(定配)하고, 여주목사(驪州牧使) 이규헌(李奎憲)을 파직하라 명하였으니, 영릉(英陵)과 녕릉(寧陵) 두 능의 고유제관(告由祭官)을 미처 차송(差送)하지 못한 때문이었다.
    • 출전 : 『哲宗實錄』 권2, 철종 1년 4월 22일 갑신.
  • 1850년(철종 1) 영릉·녕릉 두 능의 보토당상 이하의 관원에게 포상함
    • 내용 : 영릉(英陵)과 녕릉(寧陵) 두 능의 보토당상(補土堂上) 이하의 관원에게 차등을 두어 시상하고, 여주목사(驪州牧使) 김재전(金在田)에게는 가자(加資)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2, 철종 1년 5월 14일 을사.
  • 1851년(철종 2):전 여주목사 이규헌을 포상할 것을 서계함
    • 내용 : 경기 암행어사(暗行御史) 유안(柳晏)을 불러 보았는데, 전 양지현감(陽智縣監) 최집(崔鏶), 파주목사(坡州牧使) 이길구(李吉求), 전전 여주목사(驪州牧使) 이규헌(李奎憲) 등을 포장하여 승서(陞敍)할 것을 서계(書啓)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3, 철종 2년 3월 29일 병진.
  • 1852년(철종 3):관소에 난입한 여주 색리를 잡아 올려 형신함
    • 내용 : 하교하기를, “지금 빈사(賓使)와 기백(畿伯)의 장계(狀啓)를 보건대 여주색리(驪州色吏)가 한밤중에 관소(館所)에 난입(亂入)한 일은 놀라울 뿐만이 아니다. 요즈음 기강(紀綱)이 해이해졌다 하더라도 어찌 이와 같은 무엄(無嚴)한 습속이 있겠는가? 칙행(勅行)의 소중함이 과연 어떠한가? 빈사(賓使)와 도신(道臣)이 진실로 마음을 다하여 경계하고 조심하였다면 어찌 이와 같은 전에 없던 일이 있었겠는가? 이것은 심상(尋常)하게 처리할 수 없으니, 빈사(賓使)와 기백(畿伯)은 파직(罷職)의 법(法)을 시행하고, 여주겸임파주목사(驪州兼任坡州牧使)와 내외금란차사원(內外禁亂差使員) 가평군수(加平郡守)·포천현감(抱川縣監)과 호행장(護行將) 영종첨사(永宗僉使)는 파직(罷職)하는 데 그칠 수 없으니, 모두 나문(拿問)하여 처리할 것이며, 난입한 색리(色吏)는 기영(畿營)에 잡아 올려 엄중하게 형신(刑訊)해서 끝까지 핵실하여 공초(供招)를 받아 계문하도록 하라.” 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4, 철종 3년 4월 15일 을미.
  • 1856년(철종 7):여주목에 휼전을 내림
    • 내용 : 여주목(驪州牧)의 불탄 가호(家戶)에 휼전(恤典)을 주고, 하교(下敎)하기를, “곧 기백(畿伯)의 장계(狀啓)를 보건대 여주의 실화(失火)는 진실로 매우 참혹할 뿐만 아니다. 천여 호(千餘戶)가 일시(一時)에 화재(火災)를 당한 것도 놀랍고 참혹한 일인데다가 인명(人命)의 치사(致死)가 적지 않았으니, 그들의 부르짖고 앞을 다투는 형상을 생각한다면 실로 차마 상도(想到)할 수가 없겠다. 이것을 만약 별반(別般)으로 위로하고 구휼하는 거조가 없다면 살 곳을 잃은 백성들이 장차 어떻게 안정하여 거주하겠는가? 도내(道內)의 관질(官秩)이 높은 수령(守令) 가운데서 위유사(慰諭使)를 차출(差出)하여 즉시 달려가게 하되, 모든 안위(安慰)시킬 절차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헤아려서 조처(措處)한 뒤에 장계로 알려라. 경기감사와 여주목사도 역시 십분(十分) 진지하게 의논하여 주휼(賙恤)하고 집을 짓게 하는 방책을 즉시 빠르게 거행토록 하라.” 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8, 철종 7년 4월 16일 임인.
  • 1857년(철종 8):여주의 능에 식목하고 관사를 새로이 건축하게 함
    • 내용 : 희정당(熙政堂)에서 차대(次對)를 행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여러 날을 계속하여 내리는 비가 문득 긴 장마를 이루어 매우 상리(常理)에 어긋나니, 내 마음이 몹시 두렵다.” 하니, …… 조두순(趙斗淳)이 또 아뢰기를, “각 능원관(陵園官)이 직임(職任)을 다하지 못한 죄에는 저절로 정해진 형률(刑律)이 있는데도, 처분하신 것이 일찍이 없었던 특은(特恩)에서 나왔습니다. 여주(驪州) 두 능소(陵所)의 일에 있어서는 더욱 놀랍고 송구스러우니 한번 새로 재식(栽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신(道臣)과 지방관(地方官)은 직접 그 역사(役事)를 감독하고 사용하는 데 필요한 물력(物力)을 호조(戶曹)·선혜청(宣惠廳)의 아문(衙門)과 삼영문(三營門)에서 나누어 지급하라는 뜻을 청컨대 명령을 내려 알리도록 하소서.” 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9, 철종 8년 4월 13일 갑오.
  • 1857년(철종 8):묘호와 존호를 추상할 때의 도감 도제조 이하 등에게 차등 있게 시상함
    • 내용 : 묘호(廟號)와 존호(尊號)를 추상(追上)할 때의 도감도제조(都監都提調) 이하와 영릉(英陵)과 녕릉(寧陵)에 보토(補土)할 때 이를 감동(監董)한 당상(堂上) 이하에게 차등 있게 시상(施賞)하였다. …… 보토(補土)할 때의 당상(堂上)인 여주목사(驪州牧使) 이병문(李秉文)에게 아울러 가자(加資)하였다.
    • 출전 : 『哲宗實錄』 권9, 철종 8년 12월 24일 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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