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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현종

  • 1660년(현종 1):대사헌 조수익이 상소하여 사직하였으나 불허함
    • 내용 : 대사헌 조수익(趙壽益)이 여주(驪州)에 있으면서 자기 어미 병으로 상소하여 사직하였는데, 상이 불허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 현종 1년 4월 5일 기축.
  • 1660년(현종 1):녕릉의 변에 대한 치죄함
    • 내용 : 여주(驪州)의 유학(幼學) 박환(朴煥)이 소를 올려 아뢰기를,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안에는 심복(心腹)이 될 어진이가 없고, 밖에는 충성스럽게 간하는 선비가 없어 조금 도를 넘는 말이라도 발설하면 이것이 도리어 언로를 막는 구실이 되고, 공론이 혹시라도 일어나면 문득 권세가에게 가리우게 됩니다. 신은 들으니 손가락 하나로 눈을 가려도 태산(泰山)을 볼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전하를 가리는 자가 하나뿐이 아니니 볼 수 없는 것이 태산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고도 망하지 않는 자는 없었습니다. 지난번 녕릉(寧陵)의 변은 전혀 예상 밖에서 생겼는데, 신은 죄가 누구에게 있고 책임은 어디로 돌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당상관들은 불경죄로 다스리고 공장(工匠)의 무리는 전부 효시하여 나라 사람들의 분을 풀어 주고 조금이나마 하늘에 계신 선왕의 영령을 위로하소서. ……” 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3, 현종 1년 9월 17일 기사.
  • 1662년(현종 3):여주에 지진 발생
    • 내용 : 상이 자정전(資政殿)의 상참(常參)에 나아갔다. 예(禮)가 끝나자 옥당과 간관이 전(殿)에 올라가 일을 아뢰었다. 대사간 민정중(閔鼎重)이 아뢰기를, “경기 여주(驪州)에 지진의 변고가 있었는데도 도신(道臣)이 즉각 계문(啓聞)하지 않았으니 너무도 놀라운 일입니다. 감사 정지화(鄭知和)를 추고하소서.” 하니, 따랐다.
    • 출전 : 『顯宗實錄』 권5, 현종 3년 1월 9일 계미.
  • 1662년(현종 3):여주에 지진이 발생함
    • 내용 : 상이 자정전(資政殿)에 나아가 백관의 상참례를 받았다. 마치고 나서 간신과 유신이 전에 올라 일을 아뢰었다. 대사간 민정중이 아뢰기를, “경기 여주(驪州)에 지진이 일어난 변고가 있었는데도 도신(道臣)이 즉시 아뢰지 않았으니 일이 매우 놀랍습니다. 감사 정지화를 추고하소서.” 하니, 상이 따랐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6, 현종 3년 1월 9일 계미.
  • 1662년(현종 3):병조판서 허적이 명을 받고 올라오다가 병이 악화되자 여주에서 소장을 올려 사직함
    • 내용 : 병조판서 허적(許積)이 소명(召命)을 받고 올라오다가 여주(驪州)에 이르러 병이 악화되자 소장을 진달하여 사직하니, …… 이어 어의(御醫) 정후계(鄭後啓)에게 명하여 말을 달려가서 간병(看病)하게 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5, 현종 3년 5월 12일 갑신.
  • 1662년(현종 3):병조판서 허적이 부름을 받고 올라오는 중에 병이 심하여 여주에서 사직함
    • 내용 : 병조판서 허적이 부름을 받고 올라오는 도중 여주(驪州)에 도착하여 병이 심하다는 이유로 상소하여 사직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7, 현종 3년 5월 13일 을유.
  • 1663년(현종 4):병조참판 조수익이 여주에서 사직을 청함
    • 내용 : 병조참판 조수익(趙壽益)이 여주(驪州)에 있으면서 상소하여 사직하니, 허락하지 않았다. 수익은 바로 유성룡(柳成龍)의 외손으로서 평소 시망(時望)이 있었고 청현(淸顯)의 직을 역임하였다. 노모(老母)를 여주에 모셔두고 왕래하면서 관직에 종사하였는데, 조경(趙絅)을 구제하기 위하여 소를 올렸다가 대간으로부터 ‘수익이 어미가 병중에 있다는 핑계로 국상(國祥)에도 오지 않아 공론이 바야흐로 일고 있는데도 사교(私交)를 위하여 구원의 손을 펴고 있다’ 하는 논핵을 받았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9, 현종 4년 10월 1일 乙未.
  • 1664년(현종 5):여주에 낙향한 조수익을 예조 참판에 제수함
    • 내용 : 정치화(鄭致和)를 대사헌으로, 조수익(趙壽益)을 예조 참판으로 삼았다. 수익은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깨끗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일찍이 소를 올려 윤선도(尹善道)와 조경(趙絅)을 신구하다가 당시 무리들의 비위를 크게 거슬러 심한 탄핵을 입었다. 이로부터 여주(驪州)의 강가에 은거하여, 비록 직명이 내려도 번번이 병으로 사양하고 나오지 않았다.
    • 출전 : 『顯宗實錄』 권9, 현종 5년 7월 16일 을사.
  • 1665년(현종 6):파주·여주 등지에 우박이 크게 내림
    • 내용 : 파주(坡州)·여주(驪州)·이천(利川)·장단(長湍) 등지에서 우박이 크게 내렸는데, 혹은 밤톨만하고 혹은 콩알만 하여 보리·밀·목화가 모두 손상을 입었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0, 현종 6년 4월 23일 기묘.
  • 1665년(현종 6):파주·여주·이천 등지에 우박이 내림
    • 내용 : 파주(坡州)·여주(驪州)·이천(利川)·장단(長湍) 등지에 우박이 크게 내렸는데, 혹은 밤톨만하고 혹은 콩알만 하여 보리·밀·목화가 모두 손상을 입었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3, 현종 6년 4월 23일 기.
  • 1666년(현종 7):여주목사 김수익의 파직을 청함
    • 내용 : 집의 이익, 장령 김징 등이 …… 또 아뢰기를, “여주목사(驪州牧使) 김수익(金壽翼)은 일찍이 제주 목사로 있을 때 어사의 안찰로 인해 장오죄로 폐고된 지 거의 수십 년이 되었고 지금은 늙어서 더욱 취할 것이 없으니, 다시 자목(字牧)의 임무를 맡기는 것은 정사의 법도에 크게 위배됩니다. 당해 당상과 낭청을 추고하고 김수익을 파직하소서.” 하니, 상이 따르고, 수익은 체차하라고 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3, 현종 7년 12월 5일 신해.
  • 1669년(현종 10) 경기 여주에 우박이 내림
    • 내용 : 원양도(原襄道) 영월(寧越) 등 고을과 경기 여주(驪州) 등 여섯 고을에 이달 4일에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었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7, 현종 10년 10월 11일 신미.
  • 1669년(현종 10):원양도 영월과 경기 여주 등 여섯 고을에 우박이 내림
    • 내용 : 원양도(原襄道) 영월(寧越)과 경기 여주(驪州) 등 여섯 고을에 이달 4일에 우박이 내려 곡식이 손상되었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1, 현종 10년 10월 11일 신미.
  • 1671년(현종 12):집의 이단석이 여주목사 권상구를 탄핵함
    • 내용 : 집의 이단석(李端錫)이 아뢰기를, “여주목사(驪州牧使) 권상구(權尙矩)는 남한(南漢)의 조곡을 받아 내어 가는 일 때문에 민간에 영을 내려 온 고을의 백성을 일제히 모이게 하고는 시기가 지나도 오지 않아서 굶어 죽은 자까지 있었고 닷새가 지난 뒤에야 술에 취한 몸을 싣고 비로소 왔으나 혼미하여 정신을 못 차려서 나누어 줄 때에 허술한 것이 많았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 모두 파직하여 서용하지 마소서.” 하니, 상이 모두 특별히 명하여 나문하게 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9, 현종 12년 6월 14일 계사.
  • 1671년(현종 12):집의 이단석이 여주목사의 바르지 못함을 아룀
    • 내용 : 집의 이단석(李端錫)이 아뢰기를, “여주목사(驪州牧使) 권상구(權尙矩)는 남한(南漢)의 꾸어주는 곡식을 받아 가라고 민간에 영을 내려 온 고을의 백성을 일제히 모이게 하고는 시기가 지나도 오지 않아서 굶어 죽은 자까지 있었습니다. 닷새가 지난 뒤에야 술에 취한 몸을 싣고 비로소 왔으나 혼미하여 정신을 못 차려서 나누어 줄 때에 허술한 것이 많았으니,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 모두 파직하여 서용하지 마소서.” 하니, 상이 모두 특별히 명하여 나문하게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4, 현종 12년 6월 14일 계사.
  • 1671년(현종 12):사간 박지 등이 여주 제주관 심유를 탄핵함
    • 내용 : …… 이때 심유가 우의정 홍중보의 제주관으로 여주(驪州)에 가서 관리에게 형벌을 남용하였다. 목사 최일(崔逸)이 이를 치보하였기 때문에 또 목사 최일이 논핵한 보고가 체례를 잃은 데 대한 죄를 논하여 파직하기를 청하였으나 상이 따르지 않았는데, 두 번 아뢰고는 곧 정계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9, 현종 12년 7월 26일 을해.
  • 1671년(현종 12):지평 윤가적이 여주목사 최일을 탄핵함
    • 내용 : 지평 윤가적(尹嘉績)이, 여주목사(驪州牧使) 최일을 다시 논하여 파직하기를 청하고, 또 포도대장 구문치(具文治)가 순라병을 못살게 굴고 마음대로 부린 죄를 논하여 파직하기를 청하니, 상이 모두 무겁게 추고하라고 명하였다. 여러 번 아뢰었으나 다 따르지 않았다.
    • 출전 : 『顯宗實錄』 권19, 현종 12년 8월 2일 경진.
  • 1673년(현종 14):우의정 김수흥이 여주 등의 경술년 조의 전세에 관해 아룀
    • 내용 :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 수흥이 아뢰기를, “능을 옮길 때 기읍(畿邑) 백성들의 노역이 배나 심합니다. 여주(驪州) 등 5개 읍의 대동미(大同米)를 이미 3두(斗)씩 감하고 기타 읍도 각각 1두씩 감해주기로 했습니다만, 지금 다시 1두씩 더 감해주어 너그럽게 보살펴주는 뜻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7, 현종 14년 9월 21일 정해.
  • 1673년(현종 14):우의정 김수흥과 함께 여주 천릉의 일과 탕감의 일을 의논함
    • 내용 : …… 상이 이르기를 “양주(楊州)·여주(驪州)는 특별히 넉넉하게 보살펴야 하겠다.” 하니, 수흥이 그렇다고 하였다. 상이 금년 봄의 대동미(大同米)를 모두 감해주도록 명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1, 현종 14년 10월 13일 기유.
  • 1673년(현종 14):상이 김수흥을 인견하고 여주의 구휼에 대해 이름
    • 내용 :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우의정 김수흥(金壽興)을 인견하였다. …… 상이 이르기를, “양주(楊州)와 여주(驪州) 두 읍은 별도로 우대하여 구휼해 주어야 마땅하니, 올봄 대동미(大同米)를 전액 감면토록 하라.” 하였는데, 수흥이 또 죽산(竹山)·음죽(陰竹)·지평(砥平)·용인(龍仁)·양지(陽智) 등 5개 읍도 대동미를 2두(斗)씩 감해 줄 것을 청하니, 상이 따랐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7, 현종 14년 10월 13일 기유.
  • 1673년(현종 14):경기지방에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림
    • 내용 : 경기 여주(驪州) 등의 고을에 천둥과 번개가 쳤고, 수원부(水原府)에는 천둥이 치고 우박이 내렸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1, 현종 14년 11월 20일 을유.
  • 1673년(현종 14):경기 여주 등 고을에 천둥 번개가 침
    • 내용 : 경기 여주(驪州) 등 고을에 천둥 번개가 쳤다. 수원부(水原府)에 천둥이 치고 우박이 쏟아졌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7, 현종 14년 11월 20일 을유.
  • 1674년(현종 15):녕릉 참배 뒤의 과거 설치 절목에 대해 의논함
    • 내용 : 상이 여주(驪州)에 가 녕릉(寧陵)을 참배하려고 하자, 우상 김수흥이 아뢰기를, “능을 참배한 뒤에 조종조의 고사에 따라 여주에서 과거를 설치할 일에 대해서 그전에 이미 아뢰었습니다만, 문과와 무과의 합격자 발표 시간이 같지 않으므로 반드시 먼저 여쭈어 정해 놓아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종조에 여주에서 과거를 설치할 때의 모든 절목과 당시 과거보는 사람에 있어서 본 고을 사람만 허용하였는지 혹은 일도 전체의 사람에게 허용하였는지의 여부에 대해 춘추관으로 하여금 실록을 상고해낸 다음 여쭈어 정하게 하라.” 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2, 현종 15년 1월 17일 임오.
  • 1674년(현종 15):상이 흥정당에 나아가 녕릉의 참알하는 시기를 택함
    • 내용 : 상이 흥정당(興政堂)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신하들을 인견하였다. 이때 상이 장차 여주(驪州)에 거둥하여 녕릉(寧陵)을 참알하려 하여 마침내 예조로 하여금 2~3월 사이에 날짜를 택하라고 하였는데, 우의정 김수흥이 아뢰기를, “능을 참배한 뒤에는 조종조의 고사에 따라 여주에서 보여야 하는 일을 일찍이 진달드렸습니다. 그런데 문과와 무과의 합격자 발표 날짜가 늦고 빠른 차이가 있으니 미리 품정(禀定)해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중종조(中宗朝) 때 여주에서 과거를 보일 당시의 절목(節目) 및 과거 응시자의 자격을 본주(本州)에 대해서만 허락했는지 아니면 도 전체를 허락했는지의 여부에 관해 춘추관으로 하여금 『실록(實錄)』을 상고해 내게 한 뒤에 품정토록 하라.”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7, 현종 15년 1월 18일 계미.
  • 1674년(현종 15):상이 뜸을 뜸
    • 내용 : 상이 뜸으로 생긴 종창 때문에 침을 맞았다. 우상 김수흥이 아뢰기를, “능에 거둥할 날짜를 다시 택하라고 명하셨는데, 3월 20일 즈음은 농사철이 이미 박두해 있는 때이고 여주(驪州)와 이천(利川) 사이에 천연두가 한창 번지고 있으며 게다가 상의 뜸뜬 자리의 종기가 완전히 아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니, 이때 거둥하시면 여러 가지로 불편할 것입니다. 효심을 억지로라도 누르시고 가을철로 날짜를 물려 행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8월 중의 날짜로 택하라.”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7, 현종 15년 2월 14일 무신.
  • 1674년(현종 15):충호사 김수흥 등이 새 능소의 재혈을 위하여 여주로 감
    • 내용 : 총호사 김수흥, 예조판서 홍처량, 도감당상 민유중이 새 능소의 재혈(裁穴)을 위하여 여주(驪州)로 갔는데 수흥이 전 목사 정창도, 전 정랑 신경윤 등과 함께 가게 해줄 것을 청하여, 그대로 따랐다.
    • 출전 : 『현종개수실록』 권28, 현종 15년 3월 6일 경오.
  • 1674년(현종 15):상이 여주 등의 지형에 대해 물음
    • 내용 : 상이 사현합 여차에서 뜸치료를 받고 이어 총호사 김수흥을 인견하였다. 수흥이 아뢰기를, “신이 도감 당상과 함께 수로 사정을 살펴보기 위해 지금 나가려고 하는데 수로 사정을 자세히 아는 자를 불러 물어보았더니 광나루에서 여주(驪州)까지 여울진 곳이 25군데인데 그 중의 양근(楊根) 여울이 제일 크고 험하고 두 바위 사이로 물길이 좁아 물살이 매우 세다는 것입니다. 빈 배를 가지고 먼저 시험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먼저 겉 재궁(梓宮)을 싣고 시험해보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8, 현종 15년 3월 25일 기축.
  • 1674년(현종 15):현종 지문(誌文) 중의 여주 기사
    • 내용 : 지문(誌文)은 이러하다. …… 이보다 앞서 효종의 능에 무슨 사고가 있어 계축년 겨울에 능소를 여주(驪州) 홍제동(弘濟洞)에 자좌 오향(子坐午向)으로 된 산등성이로 옮겨 모셨는데, 이때 와서 후의 생전 명령에 따라 6월 4일을 기하여 그 아래에다 부장(附葬)하였는바, 같은 산줄기에 거리가 가까움을 취해서였다. 그리고 인하여 녕릉(寧陵)이라고 칭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8, 현종 15년 6월 4일 정유.
  • 1674년(현종 15) 상이 여주 등지의 산릉역의 노고에 대해 의논함
    • 내용 : 상이 양심합에 나아가 대신 및 비국의 재신들을 인견하였다. …… 사간 정재희가 아뢰기를, “산릉(山陵) 역사로 하여 양평(楊平)·광주(廣州)·여주(驪州)·이천(利川) 백성들이 다른 곳과 달리 고생하였고, 지금 보리갈이 이미 지났는데도 아직 수확을 못하고 있다니, 이번 칙사 때만은 참상(站上)의 부역을 견감하여 다소나마 그들 힘을 펴주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8, 현종 15년 6월 13일 병오.
  • 현종대왕 행장(行狀) 중의 여주 기사
    • 내용 : 8월에 효종의 능을 옮기는 일로, 경유하는 양주(楊州)·광주(廣州)·여주(驪州)·이천(利川)·양근(楊根) 등 5개 고을의 대동미 징수와, 경기 고을의 봄에 징수해야 하는 대동미를 차등 있게 감해 주도록 명하였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2, 현종대왕 행장.
  • 현종대왕 행장(行狀) 중의 여주 기사
    • 내용 : 10월 7일에 여주(驪州) 홍제동(弘濟洞)에 옮겨 모셨는데, 관과 구덩이에 부수되는 물품에서부터 의위(儀衛)와 상설(象設)에 이르기까지 신중히 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거기에 드는 비용은 모두 내탕(內帑)에서 가져다 마련하였고 백성에게 징수하지 않았다.
    • 출전 : 『顯宗實錄』 권22, 현종대왕 행장.
  • 현종대왕 행장(行狀) 중의 여주 기사
    • 내용 : …… 임자 13년 10월 계묘일에 여주(驪州) 홍제동(弘濟洞)으로 옮겨 모셨는데, 영구가 지나간 5개 읍에 대하여 대동미 징수를 면제하고 경기에는 봄에 징수할 쌀을 차등을 두어 감해주었으며 경기·황해·전라·원양 4개 도의 경술년 전세 미수분을 탕감하였다.
    • 출전 : 『顯宗改修實錄』 권28, 현종대왕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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