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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효종

  • 1650년(효종 1) 여주사람 김태길의 여종 구월의 사건으로 의논함
    • 내용 : 삼성(三省)에 명하여 죄인 구월(九月)을 국문하게 하였다. 구월은 여주사람 김태길(金泰吉)의 여종이다. 그의 어미가 태길의 종에게 시집가자 구월은 그 아비를 따라 태길의 집에 가서 복역(服役)하였다. 그의 남편 역시 태길의 종이었는데, 태길에게 죄를 지어 태길이 살해하자 구월이 그 남편이 피살된 것을 분하게 여겨 내수사에 투속(投屬)하여 내비(內婢)로 자칭하였다. 마침내 인평 대군(麟坪大君) 집으로 분속되었는데, 얼마 후 태길이 시골에서 서울로 오자 구월이 대군 집의 여러 종과 같이 좁은 곳에서 기다리다가 태길을 붙들어 묶어다가 구월이 직접 찔러서 살해하였다.
    • 출전 : 『孝宗實錄』 권3, 효종 1년 2월 27일 경술.
  • 1659년(효종 10):대사간 조한영이 상소하여 민유중의 일로 사직하기를 청함
    • 내용 : 대사간 조한영이 상소하기를, “…… 신이 처음 이 직(職)에 제배되고 나서 다음날 본원(本院)에서 상회례(相會禮)를 행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여주목사(驪州牧使) 권훈(權勛)이 남양(南陽)을 역임했을 때 자못 삼가지 못했다는 비난이 있었고 연한도 이미 찼으니 전례에 의거하여 체직시켜야 된다고 언급하였더니, 민유중(閔維重)이 말하기를 ‘그도 연한 때문에 해조(該曹)에 정문(呈文)하려 했으나 아직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신이 ‘그렇다면 우선 자처(自處)하기를 기다릴 것이요, 곧바로 논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였습니다. 그 뒤 유중이 입시(入侍)했을 적에 ‘권훈은 일찍이 수령을 역임하면서 드러난 치적이 있으나 연한이 이미 지났으니 체차시키소서’ 했습니다. 치적과 삼가지 못했다는 것은 서로 틀린 것이지만, 전례에 의거하여 체직을 청한 것은 같았습니다. …….
    • 출전 : 『孝宗實錄』 권21, 효종 10년 4월 19일 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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