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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왕

  • 1390년(공양왕 2):오사충(吳思忠) 등을 장단에 보내 이색을 국문함
    • 내용:사의(司議) 오사충(吳思忠), 집의(執義) 이고(李皐), 규정(糾正) 전시(田時)를 장단(長湍)에 보내어 이색(李穡)을 국문하게 하였다. …… 이색이 말하기를, “…… 지난해 경사(京師)에 조회가서 예부(禮部)에 이르니, 상서(尙書) 이원명(李原明)이 말하기를, ‘너의 집에서는 아버지를 내쫓고 아들을 세우니 천하에 어찌 이런 도리가 있느냐. 왕과 최영이 모두 갇혔으니 이것은 무슨 일이냐’ 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최영이 왕으로 하여금 요양을 범하도록 하였으나, 장군 조민수와 이성계가 불가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의주까지 왔으나, 감히 출발하지 못하니 최영이 자주 독촉하므로 마지못하여 군사를 돌이켜 최영을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에 왕이 노하여 여러 장수를 살해하고자 하므로 태후(太后)가 왕을 폐하여 강화에 안치하였으니 개경과 상거 20여 리(里)이며, 구도(舊都)의 경치 좋은 곳이므로 정신을 수양함이 이 땅과 같은 데가 없으며, 또 재상이 시위(侍衛)하고 의장(儀仗)·기물(器物)과 조석선봉(朝夕膳奉)이 모두 평일과 같았는데 어찌 내쫓았다고 하리오’ 하였다. 돌아와서 이시중(李侍中)에게 말하기를, ‘원명의 말은 귀로 들을 수는 있어도 입으로는 말할 수 없습니다. 여흥은 땅이 머니 가까운 곳에 두면 임금을 추방했다는 비난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어떻겠습니까’ 하였는데, 다만 이 말뿐이고 진실로 맞아 세우자는 의논은 없었다” 하였다.
    • 원문:遣司議吳思忠, 執義李皐, 糾正田時, 鞫李穡于長湍 …… 穡曰, …… 去年朝京師, 到禮 部尙書李原明曰, 汝家逐父立子, 天下安有是理, 王與崔瑩, 皆被拘囚, 是何義耶, 予曰, 崔瑩, 敎王謀犯遼陽, 將軍曺敏修, 與李 太祖舊諱 以爲不可, 到義州, 不敢發, 瑩, 數促之, 不獲已回兵, 繫瑩於獄, 於是, 王, 怒欲害諸將故, 太后, 廢王, 置于江華, 去開京二十餘里, 舊都勝地, 怡養情性, 無如此地, 且宰相侍衛, 儀仗器物, 朝夕膳奉, 皆如平日, 何放之有, 及還, 謂李侍中曰, 原明之言, 耳可得聞, 口不可道, 驪興地遠, 迎置近地, 可免放君之名, 如何, 但此語而已, 固無迎立之議.
    • 출전:『高麗史節要』 권34, 공양왕 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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