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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긍호 의병장 공한

□시 대 : 조선 1907년

□크 기 : (1) 가로 44.5cm×세로 24.2cm, (2) 가로 27.7cm×세로 24.2cm

□내 용 :

민긍호(1865~1908)는 명종 때 좌찬성을 지낸 민제인의 12대손으로 명성황후와는 같은 민제인의 후손이다. 민긍호의 의병부대는 단위부대로서도 전국적으로 규모가 가장 컸을 뿐만 아니라 가장 전투력이 막강한 의병부대로 알려져 있다. 일제 통감부는 전국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이 세차게 확산되자 순종의 이름으로 의병들을 해산하여 귀순하라는 조칙을 만들어 각도에 선유사(宣諭使)를 파견, 의병장을 휘유하여 귀순토록 하였다. 이 공한은 1907년 강원도 선유사 홍우석(洪祐晳)이 민긍호를 회유·귀순시키는데 실패하자 강원도관찰사 황철(黃鐵)이 민긍호에게 2차에 걸쳐 서한을 보내게 되는데 각각의 서한에 대한 민긍호의 공적인 답장서한이다. 이 답서는 민긍호가 쓴 원본이 아니고 당시 강원도 감영의 어느 아전이 민긍호의 원답서를 읽다가 답서에 담긴 애국충정에 감명을 받고 필사하여 놓은 것이 전해 내려온 것이다. 이 공한을 접한 일본 측은 이들은 도저히 선유할 수 없는 자들로 판단하고 민긍호 의병부대에 대한 토벌작전을 점차 강화시켜 나갔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뜻있는 사람들은 이 공한에 담긴 애국충정에 감동하여 공한을 필사하여 돌려보기도 할 정도로 유명한 공한이었다. 따라서 이 사본은 비록 원본은 아니지만 사료적 가치는 높다고 보아야 하겠다.

세부내용

공한 (1):1907년 10월 강원도 관찰사 황철에게 보낸 민긍호의 1차 답서이다. 형식상 예의가 깍듯이 갖추어져 있으나 황철의 주장에 대한 자기의 소견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피력하고 있다. 답서의 내용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첫째 민긍호는 국모(명성황후)가 살해되고 군부(君父)가 협박을 받고 있는 때에도 목숨을 보존하고 있는 큰 죄를 범하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둘째, 국권 침탈 후 의병을 일으킨 의지는 타인의 선유로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셋째, 일제에 의해 강제로 고종에서 순종으로 황위가 물려진 것임을 언급하였다. 넷째, 의병을 일으킨 동기를 피력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을미년 국모(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통한의 마음과 충성심을 견디지 못하여 의병을 일으킨 명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섯째, 황철이 귀화하라고 한데 대해 그는 만일 의병을 해산하면 우리나라 인민이 다시 그들에게 곤욕을 당하지 않고 태평을 누릴 수 있겠는가 반문하여, 이 때문에 자기는 의병을 해산할 수 없음을 피력하고 있다.

세부내용

공한 (2):1907년 11월 황철은 이번에는 횡성군수 심흥택(沈興澤)으로 하여금 그의 공한을 가지고 가서 귀순토록 권유하도록 하였다. 이 2차 공한은 이에 대한 민긍호의 답서로 1907년 11월 10일 심흥택이 민긍호를 만나고 춘천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답공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민긍호는 왜적이 지금 세력이 강하지만 반드시 망하리라는 신념을 표명하였다. 둘째, 일본인 통감이 우리나라 국정을 모두 주관하는 왜적의 해독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셋째, 민긍호는 자신의 영달을 완강히 거부하였다. 넷째, 강적들이 자기를 협박하여 그 형세를 당하지 못한다면 자신도 전국시대 노중련(魯仲連)처럼 망망한 대해를 밟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토로하고 있다. 다섯째, 황철이 무력을 지양하고 덕을 닦으면 반드시 대성할 것이라고 회유한데 대해 민긍호는 그대가 대성을 꾀하면 자기도 비록 의병을 해산하라는 하교가 없더라도 반드시 자기의 머리를 베어 보답하겠다고 빗대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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