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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로 보는 여주시사

여주민변도서원리원청소회

□ 奎27606

1885년(高宗 22)에 驪州民亂의 원인과 처리 과정에 대해 都書員吏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이다. 여주민란은 『日省錄』을 참고해 정리하면 ‘革都結出本稅事’로 亂民들이 通文을 돌리고 농민을 모아 여주 관아에 난입한 뒤 옥을 부수고 죄인을 풀어주었던 사건이다. 주모자는 前縣監 曺秉直·前監役 林圭浩·韓用德 등이다. 실제 여주민란은 都結 문제뿐만 아니라 退吏 尹甫吉의 오랜 농간으로 발생하였던 것으로 경기감사의 장계에 기재되어 있다. 경기감사의 장계는 윤보길의 농간 내용을 15죄목으로 상세히 기재한 일반 농민들의 공초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이다. 이에 대해 도서원리가 여주의 세금 징수 내역과 윤보길이 직접적으로 민란에 관련되지 않았음을 밝히는 내용으로 본 所懷를 작성하였다. 내용은 田稅·畓稅·雜費의 총액을 적고 大同上納稅의 내용·均役稅上納 내용·營需上納 내용 등을 적어 도서원리가 담당하였던 납세의 내용을 변명하였다. 또한 윤보길을 비롯한 金允錫·韓用德 등이 입은 피해 내용을 포함한 민란의 대략적인 과정을 적고, ‘都書員所賴’에서 도서원리가 부담한 징세과정의 어려움을 서술하였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아 민란의 원인과 조사과정에 대해 당시 도서원리층의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여주민란의 처리는 민란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 전현감 趙秉善과 전감역 임규호·한용덕 등은 의금부에 拿勘되었으며 농간을 부린 윤보길은 효시에서 減死定配로 감형, 통문에 列名하고 破獄放囚한 李秉斗·辛弼根 2명은 島配, 통문에 단순히 열명한 慶熙는 遠地定配되었다. 일반 연대기자료(『고종실록』·『승정원일기』·『비변사등록』 등)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여주지역의 정세내역과 민란의 발생 시기(1885. 2. 18)와 도서원리의 입장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1冊 14張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기는 29.3×20.6cm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90년 복제 영인한 『각사등록』v.47, 경기도 보유편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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