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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여지지』

효종대에 편찬된 전국 단위의 지리서로 최근에야 그 존재와 가치가 알려진 자료이다. 일부에서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저술이라는 주장이 없지 않으나, 아직 편찬자와 편찬연대에 대해서는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 못한 상태이다. 다만, 연혁조 및 참고서적 등의 내용을 고려할 때 대체로 현종조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하는 대에는 무리가 없다.

『동국여지지』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된 지 130여년이 지난 이후 다시금 구상된 전국 단위의 지지(地誌) 자료라는 점에서 그 일차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국가주도의 관찬지리서는 아니지만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영조조에 간행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사이의 중간 공백을 메워주는 매우 소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국여지지』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없었던 ‘역대사지(歷代史志)’조를 두어 그 강리분합(疆理分合)의 내력을 수록하고 있는데, 이는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東國地理志)』 이후 고조된 역사지리적 관심의 반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동국여지지』에서는 그 첫머리부에 한전(旱田)·수전(水田) 등 토지의 면적을 항목으로 편성하고, 그 단위를 ‘경(頃)’으로 하고 있는 점도 그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으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동국여지지』에서 여주와 관련해 주목해 볼 수 있는 사항으로는 먼저 연혁조에서는 처음으로 면(面)에 관한 사항이 나오고 있는 점, 산천조과 관련해서는 유일하게 기천(沂川)에 대한 사항을 적고 있다는 점, 대교천의 본래 명칭이 이천(伊川)이었다는 점, 도로·교통시설과 관련하여 관량(關梁)이라는 항목이 설정되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따르면 조선중기 여주목의 관할 면수(面數)는 18면으로 되어 있어, 조선후기 『여지도서』의 14면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인물조에 대한 분류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는 점이 주목된다. 먼저 명현(名賢) 항목부터 시작하여 류우(流寓), 인물 등의 순으로 되어 있어 이른바 사림문화로 이해할 수 있는 조선중기의 사정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여주지역의 인물과 가문, 학맥 등을 이해하는데 주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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