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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

전근대시기 지리지 또는 지지(地誌) 자료와 관련하여 가장 일반적으로 인용되는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시대 전기의 대표적 관찬지리서일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 지지로서, 흔히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즉, 고려시대까지의 지리서가 군현의 연혁 중심의 지리지에 그치고 있는 반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지리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역사·행정·군사·사회·민속·예술·인물 등 해당 지역의 모든 사항을 망라하고 있어 하나의 읍지(邑誌)에 해당한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이러한 지지적 편찬체제는 세종대에 구상된 경상도지리지 및 『세종실록』 지리지 등의 전통을 이은, 집대성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상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간행은 1481년(성종 12) 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서 비롯되었는데, 이후 여러 차례의 수정을 거쳐 1530년(중종 25)에야 『신증동국여지승람』 55권의 체제로 완성되었다. 즉, 성종의 명령을 받들어 1477년(성종 8)에 편찬한 『팔도지리지』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시문을 첨가하여 일단락된 『동국여지승람』은 이미 성종대에 명(明)의 『대명일통지(大明一統志)』에 따라 체제를 보완하였으며, 연산군대에는 임사홍, 성현 등이 다시 교정하였다. 그리고 다시 중종의 명령을 받들어 이행(李荇) 등이 1530년에 현존의 『동국여지승람』, 즉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간행했던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삼국사기』 지리지나 『고려사』 지리지와는 그 내용이나 체제면에서 모두 비교할 바가 아닌 전혀 다른 지리서라는 점에서, 그 수록사항은 각 지방의 연혁은 물론 관원·군명(郡名)·성씨·풍속·형승(形勝)·산천·토산·성곽·관방(關防)·봉수·누정·학교·역원·교량·불우(佛宇)·사묘(祠廟)·능묘·고적·명환(名宦)·인물·시인(詩人)의 제영(題詠) 등의 순서로 배열하여 해당지역의 사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여주지역과 관련해서는 특히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는데 다름아니라 본래 독립된 하나의 행정단위를 이루었던 이포지역의 천령군(현)이 폐지되어 보다 읍격이 상승된 여주목(驪州牧) 소속으로 재편성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천령군(현)에 관한 사실은 고적조에 그 대강의 연혁만이 수록되고 있다. 반면에 여주지역은 영릉의 천장과 더불어 하나의 특수행정구역적인 지위를 확보하여 목(牧)으로 승격하였음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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