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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

현존하는 통사적 역사서로는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는 고려시대 인종의 명을 받아 김부식(金富軾)이 1145년(인종 23) 경에 책임 편찬한 삼국시대에 대한 정사(正史), 즉 공식 국가사서이다. 당시 중국에서 정사체로 자리 잡은 기전체(紀傳體)의 편찬체제를 모방하여, 국왕별 연대력인 본기(本紀, 28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 신라 12권), 지(志, 9권), 표(表, 3권, 열전(列傳, 10권)의 4부체제로 구성하였다.

『삼국사기』는 현존하는 최고의 통사적 사서라는 가치와 더불어 「志」 부분에서 각 지방의 연혁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어오기도 했다. 특히, 『삼국사기』의 지리지 부분에 수록된 명칭들은 당시의 순우리말을 한자를 음차(音借)하여 수록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삼국사기』의 지리지는 본래 「잡지(雜志)」의 9권 중 제3~6권에 해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흔히 『삼국사기』 지리지로 통칭되어왔다. 즉, 『삼국사기』 지리지의 본래 명칭은 ‘『삼국사기』 권34~권37의 잡지 지리’임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편찬 당시인 고려시대까지의 지명 변천이 기술되어 있는데, 여주와 관련된 고지명으로는 소천군(泝川郡)과 황효현(黃驍縣)의 두 가지 명칭이 등장한다. 본래 현재의 여주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은 황효현에 해당하지만, 현재의 여주권역은 이포지역에 읍치를 두었던 소천군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천군의 본래 명칭은 술천군에서 비롯된 것인데 신라 경덕왕 때 소천군으로 바꾸었으며, 고려시대에는 기천군(沂川郡)이라고 불렀다. 여주지역에 해당하는 명칭인 황효현은 본래 골내근현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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