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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읍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藏書閣에 소장되어 있다. 光武3年(1899)에 편찬된 것으로 1冊 30張(29.1×18.8cm), 地圖, 四周·短邊, 半郭(20.8×13.8cm), 朱絲欄, 半葉10行20字, 註雙行, 魚尾가 없다. 朝鮮朝 光武 3년(1899) 10월 이후에 驪州郡의 主幹에 의하여 編刊되었을 것으로 看做되는 驪州邑誌이다. 驪州邑誌는 1842~1843년 경에 이루어진 『京畿誌』에는 제1책에 收錄되어 있고, 1871년에 이루어진 『京畿邑誌』에는 제5책에 事例와 함께 收錄되어 있으며, 그리고 본 읍지는 아마도 광무 3년의 개별誌의 形態로 남아있는 여러 읍지들과 괘를 같이 하는 읍지로 보아야 될 것 같다. 이 읍지의 作成年代를 추정하는 근거로서 그 첫째는 光武 3년에 全國的으로 邑誌上送令이 내렸을 때의 몇 가지 規格中에 用紙는 주로 朱絲欄을 사용하였고, 10행 20자의 반엽이 共通點인데 본 읍지도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두 번째로는 이 읍지의 還摠 項目에는 光武 3년 10월에 度支部에서 내려진 訓令이 揭載되었다면 邑誌作成은 그 以後임이 明若看火한 事實이다. 대개 읍지의 作成은 先代에 이루어진 것을 台本으로 添削되는 것이 常例이다. 그러나 당시의 編輯主幹者가 어떤 뚜렷한 主張이 있으면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이 읍지는 後者에 해당된다고 보아야 되겠다. 그것은 『京畿志』나 『京畿邑誌』가 앞서 이루어졌음에도 그 體裁와 내용에서 전연 다른 모습으로 編輯되어있기 때문이다. 項目을 적어서 構成體裁를 살피고 아울러 그 내용도 검토해 본다.

구성 항목은 (1) 四界 (2) 建置沿革 (3) 官員 (4) 郡名 (5) 姓氏 (6) 邑治(總) (7) 坊里 (8) 結總 (9) 戶口 (10) 還總·驛賭 (11) 風俗 (12) 古蹟 (13) 祠廟 (14) 陵寢·院墓 (15) 隱逸 (16) 名宦 (17) 土産 (18) 人物 (19) 忠孝烈 (20) 城堞·烽燧 (21) 寺刹 (22) 山川名勝 (23) 題詠 (24) 邑先生 순이다.

이 읍지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미 이루어진 邑誌를 參考하지 않고 獨自的으로 이루어졌으며, 체제와 내용에서도 洗煉味가 없다. 建置沿革과 邑治(總)는 같은 類인데 중간에 다른 項目이 끼어 있으며 그 내용은 要約도 省略도 아닌 雜文처럼 체제를 잃고 있다. 광무 3년의 특징인 經濟項目이 너무 소략하게 기재되어 있다. 但 還總驛賭에서 度支部 15號訓令이 機才된 점은 注目할 만하다. 陵寢院墓, 隱逸, 名宦, 人物, 題詠 등 人物에 관한 常識과 文字에 대한 기록은 여느 驪州邑誌보다 상세하다. 따라서 이 읍지 작성의 主要目的은 人文쪽에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청구기호는 貴K2-4267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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