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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려호도

그림 상단에 쓰여진 화제(畵題)에 의하면 1732년(영조 8) 7월 19일에 화백(華伯)1)의 시를(詩) 백춘(伯春)2)이 써서 백옥(伯玉)3)에게 준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그림은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 1702~1772)4)이 창하(蒼霞) 원경하(元景夏, 1698~1761)5)의 시를 쓴 후 당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大家)이던 겸재(謙齋) 정선(鄭敾)6)의 그림과 짝 맞추어 월곡(月谷) 오원(吳瑗, 1700~1740)7)에게 선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름날 아름다운 경치 즐길 만한데
꾀꼬리 울음소리까지 들리네
푸른 숲 아래 천천리 거닐어 보니
시골에 묻혀 사는 마음 초연해지네
초가집은 그윽하고도 고요하고
문 밖에는 배 한 척 매어져 있는데
아!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를 탄 손님은
풍진 세상에 오래도 몸담고 있었네
우리는 각자 서로 떨어져 지내니
한없이 펼쳐진 아득한 황려호(黃驪湖)
그대 목소리와 얼굴 오래도록 보지 못하고
세상사(世上事)는 어찌나 험하고 험한지
기수(淇水)가의 대나무는 그대를 위해 읊은 것
군자는 잊혀지기 어려우니
갈고 닦으라는 뜻 잃지 않으면
일찍 성현의 문(門)에 들어가리라
아침 해 성근 버드나무 위로 솟아오르고
맑은 연못에 세속의 갓끈을 씻으니
멀리 백년 이내를 내다보며
원컨대 그대는 아름다운 이름 지키기에 힘쓰기를

서로 떨어져 있어 만날 기회가 적고, 세상사도 기구하지만 이름을 더럽히며 살지 않도록 힘쓰자는 내용이다. 아마도 여주의 어느 장소에서 모임을 가진 후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정선에게 그림을 받은 듯하다. 시 구절에 나오는 푸른 숲, 밭이랑, 초가집, 사공 없는 배 등이 정선의 그림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무성한 수풀 사이로 보이는 초가집 2채와 오른편으로 펼쳐진 너른 전답(田畓) 등은 그림의 주인이 되었을 오원(吳瑗)의 별서(別墅)로 추정된다. 여주의 실경(實景)을 그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화면 전체에 원(元)나라 사대가(四大家)의 화풍(畵風)을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아서 중국 문인화풍(文人畵風)을 한국의 실경(實景)에 그대로 적용시킨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다.8) 조선시대에 여주를 배경으로 그린 그림으로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견본담채(絹本淡彩)로 그렸으며 규모는 102×52.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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