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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도자기의 발전

1980년대 들어 국민소득의 증가와 환경위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플라스틱 제품류를 기피하여 도자기 식기류 수요증가와 도자예술품 수집 열풍이 불었다. 이에 따라 공장 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곳곳에서 기능공들이 독립해 공장을 설립하였으며, 1990년대 초에는 학동을 중심으로 현암리, 천송리, 지내리, 오학리 등에 400여 개의 업체로 늘어나게 되었다. 1985년 몇몇 도예가들이 모여 민속도자기 발전을 위한 협의체로 정보교환과 기술개발을 목표로 한국 최초의 민속도자기 협동조합인 ‘여주 민속도자기 공업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민속도자기협동조합은 1988년 전시관을 개관하였으며 1990년부터는 신륵사 관광지 일원에서 여주 도자기축제(여주 도자기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지역 도예산업의 경쟁력 제고 및 새로운 도자 문화창출과 박람회를 통한 문화 관광도시 위상제고와 세계 도자인들의 문화예술교류 확대를 위한 목적으로 2003년 15회째를 개최한 여주 도자기박람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국내외 바이어들과의 거래계약 체결로 인해 영업능력이 부족한 소규모 공방들에게 판로개척의 장이 되고 있다. 지역민에게는 다채로운 문화행사로 문화적 풍요로움을 만끽하게해주는 대표적인 문화축제로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1990년대 초 여주시 현암동, 오학동, 천송동 일원의 간이시설로 세워진 도자기 공장을 정비하기 위해 북내면 지내리에 도로 등 기반시설을 조성한 도예단지를 조성하여 40여 업체를 이전하였다.

도자기공장이 대부분 여주시 북내면과 오학동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요업재료인 점토가 출토되는 것과 관계가 깊다. 싸리산의 점토가 최근(1992년)까지 채굴되었으며(현재에도 매장량은 있지만 경제성의 문제로 채굴되지 않고 있다), 요업 관련 기계제작 및 재료업체 또한 북내면에 밀집되어 있다. 특히 가마소성시 연료로 사용하던 나무에서 가스 또는 전기로 연료가 바뀌어 주변에서 소성원료 채취를 하지 않아도 됨에 따라 환경조건에 따른 가마설치의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에 의해 원료구입의 용이성과 빠른 정보탐지의 필요를 느낀 도예가들의 밀집을 가져 왔으며 현재의 도예촌을 형성하게 되었다. 연대별 소성원료를 살펴보면 1950년대까지 나무를 사용하였으며 1960년대 석탄, 1970년대 기름, 1980년대 이후부터는 가스와 전기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1)

현재에도 전통적 소성방법을 고집하는 이들이 간혹 있으며 여주 내 10기 정도의 가마가 있다. 가마의 발전은 생산성의 증대와 다양한 취향의 소비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다.

당시 공장들의 대부분은 청자, 백자 등 전통 민속도자기를 생산하였으며, 몇몇 생활자기와 전기부품, 화분류 등을 생산하였다. 다년간의 연구와 기술축적으로 생산된 청자, 백자 등 민속공예품은 서울 등 대도시의 고객이나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1980년대 말의 생산액은 약 50억 원이며 일본, 미국 등지로 24억 5천여 만 원 어치를 수출하였다.

1994년 여주 공업계에 등록된 업체만 조사한 바에 의하면 336개 업체에 1,741명이 일하였다. 그러나 종업원 수가 1~2명인 공장 대부분이 등록되지 않았고, 이 수는 등록된 공장수를 넘었다. 이외에 유약, 도구재료상, 가마공업사 등을 합치면 여주 전체산업의 50% 이상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국내의 도자생산업체나 공방 관계자들이 견학 및 재료구입, 기술습득을 위해 주기적으로 들리는 등 도자산업의 메카로 자리를 굳혀 갔다.

오랜 전통과 도예업체의 밀집은 각 분야의 숙련된 기능인들을 배출하고 있다. 이들은 성형, 조각, 그림, 유약 등 도자기 제작의 중요한 분야에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장인이라 할 수 있다. 같은 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도 평생 전통도자기에 매달려 나름대로 전통도자기의 재현과 발전에 일가를 이룬 사람과 현대문화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바탕으로 한 현대 도예가들이 있다. 반면에 숙련된 기능인이라 해도 스스로의 연구개발 없이 구태의연한 전통도예 모방만을 되풀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여주도자의 전통을 잇고 있는 분야별 주요 장인에는 운곡청자의 권혁용(청자), 삼선도예연구소의 한상구(백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1호, 2005년 1월 6일 지정), 무토의 전성근(조각), 오부자옹기의 김일만(옹기, 경기도 무형문화재 37호, 2002년 10월 5일 지정) 등을 들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서양의 제조기법과 조형미를 익힌 젊은 작가들이 속속 여주에 공방을 세웠으며 실험정신과 창조정신을 바탕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 도예가들은 그 수가 많고 장르 또한 다양하여 전통 도자기명칭인 청자, 백자 등 일정한 생산품목의 명칭을 들 수 없는 게 특징이다. 현재에는 특정 품목의 명칭보다는 제작형태에 따른 전통도자, 공예도자, 현대도자, 생활도자, 조형도자, 산업도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1. 전통도자 :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면서 더 나아가 오늘날의 시대감각에 맞추어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2. 공예도자 : 작가의 공방에서 수공형태로 제작된 작품으로 쓰임새와 작품성에 비중을 두고 제작한다.
  3. 현대도자 : 순수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으로 실용성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조형성을 통해 작가의 개성이 강조된다.
  4. 생활도자 : 작품성보다는 상품성 위주의 대량생산체계를 필요로 하는 분야로 실생활에 주로 쓰이는 식기류를 들 수 있다.
  5. 산업도자 : 욕조·타일 등의 위생도기류, 전기애자 등의 전기용품이 있다.
  6. 조형도자 : 조소기법을 사용한 도예작품을 칭하며 건축물의 실내·외 공간에 장식용으로 사용된다.

제작형태에 따른 다양한 명칭 분류와 마찬가지로 도자기 제작자들의 명칭 또한 다양하다. 제작의 총책임자로서 도공, 장인, 도예가, 도예업체사장 등이 있고 부분적 기능인엔 그림을 그리는 화공, 기형을 만드는 대장, 성형사 등이 있다. 이러한 다양한 명칭은 도자산업이 급격히 산업화되면서 용어의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점도 있지만 현대사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명칭은 외형적인 것에 불과하며 중요한 것은 도자기 제작자의 끊임없는 창작의지일 것이다.

현대 도예문화의 세분화된 성격에 따라 각자의 성격에 맞는 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제작기술을 바탕으로 한 장인정신에 부합되는 장인연합회, 화인회, 도원회, 생활도자기협회와 작가정신에 의한 그룹인 도예가협회, 이카, 태동회가 있다. 태동회는 1996년 전성근을 주축으로 모인 최초의 예술단체로 볼 수 있으며 여주지역에선 최초로 도예그룹전을 가진 단체이다. 12명의 회원으로 활동하다 2000년 도예가협회의 창립으로 흡수되어 자연 해산되었다. 이전의 전통적 도자계승 활동에서 현대적 예술활동으로의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 그룹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들어난 여주도자계의 변화 중에 주목할 만한 변화는 여주대학 설립과 지역특성에 맞는 도자디자인과 개설, 석봉도자기미술관의 개관, 세계도자기엑스포 개최, 현대도자미술관의 개관 등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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