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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이전

도자기는 그 시대의 생활양식과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는 생활용기이며 현대에는 예술성 표출의 대상과 경제적 가치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르이기도 하며 아름다움과 쓰임새의 모든 면에서 우리의 풍요로운 삶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특히 음식을 담는 식기로서의 도자기는 인류가 도자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래 아직까지 그에 견줄 만한 위생적이고 전세계 다양한 음식과의 궁합이 잘 맞는 용기가 없다.

자기를 처음 만든 것은 중국이었지만, 그 기술을 이어받아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다. 상감청자와 분청자가 그것이며 조선백자 또한 중국도자에서는 볼 수 없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소박하면서도 이지적인 멋을 풍기는, 그야말로 조선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표현한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조선의 도공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사회에 새로운 자기문화를 열어주었다.

우리나라에서 만든 토기(질그릇)는 점토지질의 태토를 사용하여 섭씨 700~800도에서 구운 적갈색의 신석기시대 토기가 있다. 도기는 섭씨 800~1,000도에서 구워 물이 스며들기는 하나 비교적 단단하며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가 이에 속한다. 도기는 섭씨 1,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소성하기 때문에 태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석이 녹아 유리질로 변해 태토 사이로 흘러들어가 매우 단단하며 회청색을 띤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경질토기가 이에 속한다. 자기는 섭씨 1,200~1,400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태토의 유리질화가 더욱 촉진되어 강도가 매우 높은 그릇을 말한다. 태토로는 고령토를 사용한다. 오늘날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도자기는 고급 고령토로 만들며, 그릇 위에 다시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재벌구이를 하여 그릇의 표면이 유리화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청자는 10세기 후반부터 제작되었다. 11세기 말 전국에 수많은 가마가 세워졌으며, 12세기 중반에서 14세기 전반까지 강진과 부안은 양질의 청자를 생산하는 고려 도자의 중심지였다. 청자생산 지역의 주류가 전남북의 서해남이었던 것은 중국의 남송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조운이 편리하며 원료산지와 인접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유약에 쓰는 조개껍질의 생산과도 관련이 깊다.1)

14세기 후반 들어 경기도지역에 새로운 가마가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14세기 중국에선 원, 명의 교체가 이루어지고 국내에선 새로운 세력인 신흥사대부가 신흥무인들의 협력으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왕조를 세운 시기이다. 또한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민생이 어려워지고, 조운이 끊겨 재정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시대적 여건은 고려도자에도 반영되어 신흥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생활이념으로 삼으면서 도자기가 실생활에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튼튼하고 실용적인 그릇의 대량생산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시대 청자제작의 중심지인 강진, 부안요 대신 전국에 수많은 가마가 설치되기 시작하였다. 이 변화가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 1424~1432년 조사되어 『세종실록』 지리지에 수록된 324개소에 달하는 도자소의 가마들이다. 이를 미루어 보아 여주지역의 고령토생산과 한강수운이 닿는 곳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여주지역에서도 도자기를 고려 초부터 제작,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생산품의 대부분을 한강수운을 통해 개성 등지로 공급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여주 등 경기도지역의 도자기 생산활동은 고려백자 제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도자기제작의 구체적 기록은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비롯될 뿐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고려말~조선중기에 여주의 북내면 운촌리에 도요 3기가 있고, 그 특징은 청자상감, 백자철회, 태토비짐받침이 있다.

1999년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여주지역 가마터 지표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시기에 발굴한 북내면 중암리의 고려초기 백자가마터는 현재까지 알려진 시흥시 방산동과 용인시 이동면 서리와 함께 백자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가마터이며, 두 곳보다 가장 내륙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 가마는 고달사 등 주변의 대사찰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는 도자사적으로 주목해야 할 가마로 평가하였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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